겉돌고 있는 한국 언론의 디지털 혁신

[스페셜리스트 | IT·뉴미디어]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노키아는 한 때 휴대폰 최강이었다. 아이폰 출시 직후인 2007년 4분기엔 휴대폰 시장 40%를 독식했다. 시장 2위 모토로라의 3배 수준이었다. 하지만 ‘절대강자’ 노키아는 불과 몇 년 만에 비참하게 몰락했다. 2010년 초엔 노키아 CEO 입에서 “불타는 플랫폼에 올라타고 있다“는 자조섞인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국 노키아는 2013년 휴대폰 사업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넘기고 말았다. 최절정기에서 불과 6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노키아 몰락을 놓고 여러 분석이 쏟아졌다. 가장 대표적인 게 ‘스마트폰 시장 대응 실패’였다. 시장 변화에 넋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출간된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은 조금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외면하진 않았다. 다른 어떤 기업보다 스마트폰 시대에 열심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변화를 주도하지 못했을까? 저자인 박상인 교수는 과거의 성공 때문에 단절적 혁신을 하지 못한 게 가장 컸다고 진단했다. 아이폰 같은 단절적 혁신을 하기엔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단 얘기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여전히 핵심 수익원이던 피처폰을 포기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피처폰과 심비안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판을 뒤집는 혁신을 상업화하기에는 이해상충이 너무나 컸다”고 설명했다.


노키아 얘기는 한국 언론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요즘 언론 현장의 최대 화두는 혁신이다. 디지털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가 일상 용어가 되다시피했다. 하지만 난 요즘 언론계의 ‘디지털 혁신’ 논의가 겉돌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자면, 지금 같은 디지털 혁신 논의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혁신에 실패했던 노키아와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키아가 몰락한 건 혁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탓이 아니었다. 노키아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도 엄청나게 많이 했다. 그럼에도 실패한 건 ‘지금 당장의 수익원’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한국 언론이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독자들은 웹을 지나 모바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신문사들은 종이신문에서 수익 대부분을 올리고 있다. 파괴적 혁신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종이신문 수익을 대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혁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과감하게 혁신하기엔 지켜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노키아는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시대에 준비할 때도 핵심 인력은 피처폰과 심비안 쪽에 투입했다. 신기술에 대한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무게중심은 여전히 전통 부문에 가 있었다. 한국 언론도 비슷해 보인다. 각종 디지털 실험을 하곤 있지만 핵심인력은 여전히 종이신문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그곳이 최대 수익원이기 때문이다. 무성한 혁신 논의가 변죽만 울리고 있는 건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난 한국 언론 혁신의 길은 뉴욕타임스 보고서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 하면 부잣집 흉내 내기에 머무르고, 심할 경우 그들의 엄청난 물적 토대를 부러워하다가 끝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이 제대로 된 ‘디지털 퍼스트’를 구현하기 위해선 노키아의 실패를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곳에 최고의 반면교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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