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제작국에서 경력기자를 채용하기로 한 것은 좋은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다.” MBC기자협회가 자사의 시사기자 경력 채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하자 이를 반박하는 MBC 시사제작국장의 말이다. 좋은 기자를 뽑겠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훌륭한 시사제작물을 만들 수 있는 기자들이 MBC에 넘치는데 왜 그들을 활용할 생각은 안 하는지 모르겠다. 오죽 답답했으면 MBC기자협회가 ‘MBC에 기자가 없는가’라고 했겠나.
MBC는 2012년 파업 이후 70여명의 경력기자를 뽑았다고 한다. 경력기자들이 보도국 주요 부서를 채우는 동안 경영진에 밉보인 기자들은 하나 둘, 때로는 무더기로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신사업개발센터 등 이름도 생소한 부서로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을 기자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런 와중에 이상호 기자는 또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해고 2년6개월 만인 지난해 7월 복직한 후 한 달 만에 정직 6개월 재징계를 받고 올해 2월 회사에 돌아왔는데 또 다시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아무리 밉기로 서니 한명의 기자에게 3번씩이나 징계의 비수를 꽂는 언론사가 있을까.
MBC가 제시한 징계사유는 10가지에 이르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정부의 구조 실패 책임을 다룬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7시간’ 제작이 핵심 징계사유로 파악된다. MBC는 지난 3월7일 이 기자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한 후 한 달이 넘도록 결과를 공표하지 않다가 지난달 25일 2차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인사위원회를 두 번씩이나 개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총선을 앞두고 언론 탄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발표 시기를 조절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한 법정싸움 끝에 복직한 이 기자에게 ‘정직 6개월’의 징계를 연거푸 두 번씩이나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찍히면 끝까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광란의 보복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상호 기자는 3일 “MBC에서 더 이상 기자로서 소명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며 사표를 냈다.
기자들을 보도국 밖으로 내쫓고, 징계·해고를 남발하면서 제대로 된 보도를 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전경련에서 거액의 뒷돈을 받고 청와대 인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해 MBC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지난달 17~27일 MBC 등 7개 방송사 메인뉴스의 어버이연합 관련 보도량을 분석한 결과, MBC 뉴스데스크 보도는 1꼭지에 불과했다.
MBC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공개한 ‘2015년 방송채널 평가지수’ 조사에서 MBC는 7개 항목 중 공정성·신뢰성·흥미성 등 5개 항목에서 지상파 꼴찌를 기록했다. 전국의 여러 연령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시청자 평가지수’도 지상파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
MBC는 이대로 시청자에게 외면 받는 방송으로 전락할 것인가. 안광한 사장 등 MBC 경영진은 MBC에 닥친 위기를 타개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노조와 불화하고 바른 말하는 구성원들을 ‘괘씸죄’로 찍어내기에 급급하다. MBC 정상화는 멀리 있지 않다. 유능한 기자들을 보도국에서 일하게 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키고 경영진의 잘못을 사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백종문 녹취록’에서 드러난 것처럼 근거도 없이 해고를 자행하는 경영진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