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로부터 ‘밀실개편’, ‘공영성 포기 선언’이라는 비판이 나오던 KBS의 조직개편안이 결국 이사회에서 통과됐다.
KBS이사회는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 6층 대회의실에서 임시이사회를 열고 ‘직제규정 개정(안)’, ‘인사규정 개정(안)’, ‘개방형 직위 운영규정 제정(안)’ 등 사안을 놓고 논의한 끝에 수정의결 했다. 여당 추천 이사 7인 중 6인이 찬성표를 던졌으며, 이인호 이사장은 기권했다. 조직개편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야당 추천 이사 4인은 표결 전 퇴장했다. 조직개편안은 이르면 이달 16일부터 시행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KBS가 당초 지난달 27일 이사회 의결을 목표로 조직개편을 추진해 온 데서 한 주가 미뤄져 나온 결과다. 야권 추천 이사들은 공영방송의 공적 가치 실현이 어려운 개편안이라는 점, 구성원과의 협의가 부족했다는 점 등을 들어 충분한 의견수렴을 요구했고, 여기에 여권 추천 일부 이사들도 동의하면서 의결이 연기됐다. 야권 추천 한 이사는 지난 4일 의결에 대해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는 게 없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 퇴장하게 된 것”이라며 “이인호 이사장 역시 시간을 갖고 보다 신중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기권한 것 같지만 결국 통과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의 조직개편안은 신설된 방송본부 등 ‘사업 중심’ 조직으로 기존 조직을 완전히 재편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 6본부(편성・보도・TV・기술・시청자・정책기획) 4센터(콘텐츠창의・라디오・제작기술・글로벌) 체제를 1실(전략기획) 6본부(방송사업・미래사업・보도・제작・운영・네트워크) 3센터(라디오・영상제작・제작기술) 1사업부(드라마사업부) 체제로 변화시키면서, 신설된 방송사업본부 등에 막대한 권한이 쏠리는 구조다. 이날 통과된 조직개편안은 지난달 19일 KBS노동조합과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등 양대 노조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명회에서 나온 개편안에서 일부가 수정됐지만 노선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KBS 구성원들은 이를 두고 수익, 사업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이 운영되면서 시사·교양·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위축되는 등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기존 TV본부 내 교양문화국, 기획제작국, 예능국은 신설되는 제작본부 내 TV프로덕션 담당 그룹에 모이게 되고 방송본부 내 제작투자담당에게 피칭을 통해 투자 유치를 받아야 한다. 기존 시사·교양 프로그램 등 TV본부 내 각 국이 조율을 통해 예산을 배정받았다면, 이젠 편성제작회의가 사라지고 방송본부가 편성까지 독점한 상황에서 ‘수익의 잣대’로 평가받고 편성될 소지가 커진다는 의미다.
이번 개편을 통해 보도본부 역시 변화를 겪게 됐다. 당초 노조 등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 자리에선 촬영기자들이 보도본부 밖으로 밀려나 취재기자와 떨어지는 등 뉴스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는 안이 제시됐지만 이는 개선됐다. 하지만 탐사보도팀과 데이터저널리즘팀이 보도 전략 등을 수립하는 신설 보도기획부 산하로 이관되는 등 역할 축소가 우려돼 축소, 위축 우려가 여전한 상황이다.

개편안이 통과되자 야당 추천 이사와 새노조 등은 성명을 내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새노조는 지난 4일 <공영방송 포기 ‘조직개편’,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회사 스스로 밝힌 것처럼 ‘흥행성과 수익성의 잣대’ 아래 공익적인 시사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는 신음하다 고사할 것이고, 교양프로그램은 감동과 공익보다 ‘말초적인 재미’에 내몰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라디오 시사·정보프로그램은 보도본부의 기형적인 운영과 관리 통제 아래 현재의 ‘KBS뉴스’처럼 ‘공정한 뉴스’도 ‘유익한 정보’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것”이러고 덧붙였다. 이번 개편을 통해 라디오국 1라디오부 업무는 통합뉴스룸 내 방송주간으로 이관됐다.
새노조는 또 이번 조직개편안이 수익성도 보담할 수 없는 개악안이라고 밝혔다. 새노조는 “드라마 역시 ‘불멸의 이순신’, ‘제빵왕 김탁구’, ‘어셈블리’ 등 KBS만이 방송할 수 있는 공익과 흥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다르마들은 사라지고 오직 한류에 기댄 ‘로맨틱 코미디’만이 피칭(pitching)을 통과할 것이며, 예능 역시 경쟁사 프로그램보다는 내부 구성원과 우리 프로그램끼리의 무분별한 경쟁으로 내몰려 공멸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이번 개편안에 대해 구성원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부분은 의견수렴 과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밀실 개편'이라는 점이다. KBS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대적인 변화라는 이번 조직개편을 두고 KBS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거친 의견수렴 과정은 양대 노조를 대상으로 지난달 19일 진행한 1시간 30분 가량의 설명회가 전부였다. 이후 직능단체 대표자 중 일부와 반나절 정도의 면담을 진행했지만 이 역시 노조와 각 직능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한 결과였다. 결국 조직개편안은 이사회 첫 보고가 이뤄진 지난달 20일부터 단 2주 남짓한 기간에 의결됐다.
야권 추천 이사들은 지난 4일 의결 후 낸 성명에서 이 같은 과정과 조직개편안의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이런 조직개편안이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직 전체를 뒤흔드는 개편을 하면서도 일방적인 설명회에 그치고, 구성원들의 공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던 문제점을 지적하고 단 일주일이라도 더 의견 수렴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대영 사장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했다. 또 공영방송 KBS이사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조직개편 논의를 해야 할 다수 이사들은 경영진의 무성의함을 방관했고, 시간을 더 줄 경우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오늘 표결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고대영 사장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고 이사로서 책임을 져야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한 스스로의 권한을 부정하는 행위”라며 비난했다. 이들은 "이후 조직 개편으로 인해 우려되는 공영성의 훼손, 시청자의 신뢰 상실, 수익성 감소 등 모든 부작용에 대해 고대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다수 이사들은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