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성 후퇴 논란 부른 KBS 조직개편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 조직 개편안이 지난 4일 야당 이사들이 퇴장한 가운데 임시이사회에서 통과됐다. 야당 이사들은 같은 날 성명을 통해 “공영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고 오직 효율성이나 수익성만을 강조한 개편안”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KBS본부 역시 “공익적인 시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는 신음하다 고사할 것이고, 교양 프로그램은 감동과 공익보다 ‘말초적인 재미’에 내몰릴 것”이라고 원색적인 비난 성명을 냈다. 요컨대 반발의 핵심은 이번 개편안이 공영방송의 핵심 가치인 공영성을 외면한 채 수익성 확보에만 집착한 결과라는 것이다.


고대영 KBS사장은 최근 직원 조회에서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 공영성은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국민이 외면하는 공영성은 결국 제작자들의 공허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예로 들며 “국민이 보고, 느끼고, 감동하고, 좋아하면 공영성이 아닙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수신료는 KBS 재원의 40%에 불과하기 때문에 조직의 효율성을 높여야 공영성에 기반한 대국민 서비스를 할 수 있으며,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은 그 효율성을 높이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고대영 사장이 조회사를 통해 밝힌 조직 개편안에 관한 소신은 일견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지상파의 존립 기반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작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프로그램의 경쟁력이 공영성과 직결된다는 주장은 적어도 KBS의 구성원이라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당위이기도 하다. 문제는 고대영 사장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그 공영성의 내용과 방향이다.


KBS 뉴스를 예로 들어보자. KBS 뉴스는 최근 불거진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의혹에 관해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했다. 과거 논쟁적인 사안의 보도에서 어버이연합을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로 비중 있게 다뤄왔던 관행에 비추어보면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KBS 기자협회가 내부 모니터를 통해 수차례 문제제기를 한 데 이어 편성규약에 의거한 보도위원회까지 열기로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평기자들의 지적과 비판에 귀를 막는 불통의 의지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사측은 이번 개편을 통해 매체 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인사이드’를 일방적으로 폐지했고, 보도본부 산하 시사제작국을 분리시켜 탐사뉴스를 팀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KBS의 보도가 그동안 많은 부침을 거듭하며 안팎의 비난과 논란을 자초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공영성을 담보할 수 있었던 마지막 제도적 장치들이 일거에 사라진 셈이다. KBS기자협회 협회원 453명 가운데 253명이 개편안이 통과되기 전 연명 결의문을 내고, 시사제작국의 이관에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BS는 앞으로도 민감한 사안에 침묵하고 내부 비판에 눈감은 채 무색무취한 뉴스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고대영 사장의 말대로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공영성은 공허할 수 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보고, 느끼고, 감동하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KBS의 경쟁력이요, 공영방송의 존립 기반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2주 만에 속전속결로 처리된 조직개편안은 적어도 보도 기능에 국한시켰을 때 고대영 사장의 소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시청자의 편에서 권력과 자본에 가장 예리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야 할 공영방송이 비판도, 논쟁도, 재미도, 정보도 없는 뉴스를 일관되게 생산한다면 과연 공영성의 책무를 수행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번 조직개편으로 인해 KBS 보도의 공영성은 단언컨대 후퇴하고 축소됐다. 공영성은 오로지 시청자를 향했을 때 의미가 있을 뿐, 권력을 향한 공영성은 오히려 관영성을 촉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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