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에 눈길이 가는 이유

[스페셜리스트 | 문화] 김빛이라 KBS 기자

“Just live well. Just live.” “그냥 살아요.”
소설 ‘미 비포 유’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Just’ 라는 단어의 울림이 이렇게 클 수 있구나. ‘그냥’ 사는 것 자체도 쉽지 않구나. 우리 모두는 ‘그냥’ 사는 이 순간을 마음껏 누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된 이 소설의 마지막이 울림이 너무 컸다.


모든 걸 다 갖춘 젊은 사업가가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단 한 번도 주체적으로 살아볼 용기를 내지 못했던 한 여자가 간병인으로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남자와, 내 곁에서 살아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


존엄사라는 참 어려운 이야기와 절절한 사랑이 맞닿은 이 지점에서 결국 나는 더 깊은 곳으로 생각을 끌고 가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하지 않았다는 게 맞을 것이다. 사랑할 권리와 죽을 권리 사이에서의 고민이라니, 너무 버거웠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다시 마주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두 남녀 배우 덕분에 이번엔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 내 생각들과 마주했다. 사랑을 해봤다면 누구든 알 것이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의 변화들, 버거워보였던 장벽을 뛰어넘어보려는 시도. 그 용기와 가능성이 기적을 선사할 것만 같은 충만함을 경험한다.


굳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찾지 않아도 되는 ‘사랑의 기적’ 실화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렇기에 전신마비의 젊은 청년이 ‘살아 있다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 여인 앞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줄거리는, 그저 눈물을 흘려온 관객들에게 흔치 않은 기회를 준다.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의 권리가 필요한 때가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가 끝까지 중립을 지켜온 부분에도 박수를 보낸다. 사랑은 존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윌은 루이자에게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라고 북돋아주고, 루이자는 윌에게 가슴 뛰는 순간을 강렬하게 선사하며 결국 그가 원했던 길로 안내한다.


만일 나라면, 나의 연인이라면, 가족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드라마, 영화, 소설 속에 사실 ‘장애’는 불쑥 등장하곤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전개를 극적으로 만들고 관객은 스며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로맨스 드라마에서 장애가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너무도 조심스럽게 다뤄져야만 하는 것이라는 시선이 외려 작품 속에서의 장애와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방해해온건 아닌지.


그래서 노희경 작가의 신작 ‘디어 마이 프렌즈’에 눈길이 간다. 여전히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완’과 ‘연하’, 안타까운 연인이 헤어진 이유는 ‘연하’가 다리를 잃게 되는 장애인이 됐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안된다’고 못박은 완이 엄마의 대사에 불편함을 지적한 시청자들이 있지만, 외려 우리 사회의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가족 중에 이미 장애인이 있기에 그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엄마는 딸의 마음 고생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대해본다. 장애가 단순히 불행의 아이콘으로 활용되지 않고 삶과 인간, 사랑의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극이 만들어지기를. 막연한 감동 이상의 힘을 보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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