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보도 개입, KBS만의 일인가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속사포처럼 떠들어댄 소리는 권력의 안하무인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영방송의 보도책임자를 위협하는 노골적 언사에 하대하고 욕설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통상적인 업무협조”라고 우기는 처사는 후안무치하다.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시민단체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이정현-김시곤 통화’ 녹취록을 통해 청와대가 KBS의 세월호 보도에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 사실이 드러났다. 이 전 수석은 “온 나라가 어려운데 이 시점에서 해경과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것이 맞느냐”며 KBS 보도에 항의하고 “아예 다른 걸로 대체해 주든지 녹음 한 번만 더 해달라”면서 KBS 보도에 개입했다.


“하필이면 또 세상에 KBS 뉴스를 오늘 봤네”라면서 대통령을 끌어들이고, “내가 진짜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계속 그렇게 하십니까”라면서 KBS 보도국장을 몰아세웠다. 이 수석의 저급한 발언은 권력의 위세를 빌어 언론을 맘대로 주무르고, 따르지 않을 경우 보복을 가하겠다는 조폭의 행동과 무엇이 다른가.


이 전 수석의 강한 압력은 결국 통했다. 2014년 4월30일 9시뉴스에서 다룬 ‘해경이 해군 정예요원의 현장 접근을 통제해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리포트는 당일 11시 ‘뉴스라인’에서 빠졌다. 김시곤 전 국장은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했다. 이 전 수석의 압박에 등 떠밀려 말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공영방송 KBS와 권력의 은밀한 거래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KBS는 이 전 수석이 자사 뉴스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만 짧게 언급하고 메인뉴스에서 아예 전하지 않고 있다. 권력이 KBS 보도에 대해 ‘넣어라, 빼라’며 쥐락펴락한 실태가 녹취록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는데도 뭐가 두려워 보도하지 않는 걸까.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보도를 주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권력뿐만이 아니라 KBS 사장의 보도 개입 실태도 충격적이다. 김시곤 전 국장이 보도국장 재직시절 기록해둔 ‘보도국장 업무일지’(비망록)에 따르면 2013년 1월11일부터 11월17일까지 길환영 전 사장은 청와대에 유리한 보도는 살리고, 불리한 보도는 죽이기 위해 시시콜콜 개입했다. 휴일에도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 관련 뉴스를 앞에 배치하라” 등의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윤창중 워싱턴 성추문 사건 보도 축소를 지시하고, ‘국정원 댓글 작업 11개 파트 더 있다’는 리포트가 나가자 보도본부 수뇌부들을 모아 놓고 “똑바로 좀 해~. 어떻게 이런 게 나갈 수 있어”라고 고함을 질렀다. 또 친박계 정치인의 발언 등 당초 편집안에 없던 내용을 다루라고 지시했다. 사장이 매일같이 뉴스 편집에 개입하고, 보도본부 수뇌부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사장의 지시를 뉴스에 반영했다니 참담할 뿐이다.


KBS에 대한 권력의 외압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정현 전 수석은 정무수석으로 재임하던 2013년 5월13일 김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잘 다뤄달라”며 KBS 보도에 개입했다.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인 언론 개입이 KBS에만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빼거나 줄이고, 대통령 관련 뉴스는 키우라고 하면서 청와대가 지금도 언론사에 전화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검찰 수사와 청문회를 통해서 ‘이정현-김시곤 녹취록’에 대한 진상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