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감시는 언론 본연의 기능이나, 그런 언론을 불편해하는 권력의 행태는 어디서나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비판하는 언론을 대하는 권력의 행태나 권력에 저항하는 언론의 행태가 다 같지는 않다. 언론인들이 비판적인 감시자로서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전문적인 직업윤리와 자부심의 정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정현 녹취록 파문을 옹호하는 새누리당과 종편의 노력이 눈물겹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공영방송 KBS의 보도국장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해서 뉴스내용 변경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부탁을 하는 홍보수석의 노력이 일상적 업무란다. 그렇다면 지금의 홍보수석도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말 그런가? 지금의 홍보수석은 하지 않고 있다면 예전에는 업무였는데 몇 년 사이에 바뀐 것인가? 구차하기 짝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다는 변론도 있다. 그때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잘못이 지워질까? 그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때도 잘못했고 이정현 수석도 잘못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면 지금도 잘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보도 통제나 보도 지침이 아니라 읍소였다는 해석도 있다. 약자의 읍소는 안타깝지만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 홍보수석의 ‘읍소’가 읍소일까? 감히 무소불위의 권력 청와대의 홍보수석이 읍소하는 것을 물리치기 쉬울까? 형식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청와대의 압력일 뿐이다.
혹 그럼 홍보수석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 홍보수석은 왜 필요할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대중의 눈에는 즉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는, 정부나 청와대의 생각을 잘 정리해 전달하고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단 공개적으로.
이정현 녹취록은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폭로한 것이다. 즉 KBS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언론에서 비판과 옹호가 난무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KBS는 조용하다. 마치 남의 일인 듯. 하지만 KBS는 조용해서는 안 된다. 공영방송이고 언론이지 않은가? 존재의 이유가 부정당하는 일이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으면, 폭로가 있었다는 사실 보도는 물론이고 KBS가 잘못했으면 자성의 방송을, 청와대가 잘못했으면 비판의 방송을 해야만 하는 언론이다. 그런데 조용하다. 지금도 협조 관계인가?
지난 총선에서 KBS는 유난히도 북한 관련 보도가 많아서 심지어는 북한 방송을 보는 것 같았다는 소감을 말하는 이도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 같지만 북한 관련 보도가 심했던 것이 청와대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정현 녹취록에 침묵하는 KBS의 행태는 그런 의혹을 증대시킬 뿐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그런데 KBS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셈이니, 이 지점에서 다른 언론은 청와대로부터 ‘읍소’의 압력을 받은 바가 없을지 궁금하다. 열심히 홍보수석의 일상 업무라고 주장하는 언론은 자신들이 받은 압력을 ‘읍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켕기는 게 있어서 열심히 옹호하고 있을까?
많은 언론에서 저널리즘을 구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언론인들에게 그들이 속한 언론은 청와대의 ‘읍소’ 대상이 아니었을지 묻고 싶다.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면, 이정현 녹취록을 보도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가해진 청와대의 압력을 드러내고 털고 가야 한다. 언론은 약자를 대신하여 권력을 비판해야 하고, 권력이 그런 언론에 압력을 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단지 민주 정부는 참고, 올바른 언론은 저항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 저항하는 유일한 길은 그 동안의 압력을 드러내는 것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