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이 폭로한 ‘이정현 녹취록’ 파문이 방송법 개정 움직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핵심은 청와대와 여당이 사장을 실질적으로 낙점하는 이사회 구성을 바꾸자는 쪽으로 모아진다.
김시곤 전 국장은 녹취록 파문 초기부터 줄곧 KBS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6일 징계무효소송 항소심에 출석한 김 전 국장은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KBS 사장을 선임하는 것을 그대로 놔둬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언급했다.
이번 녹취록에서 드러났듯, 청와대가 언론사 고유의 뉴스가치 판단까지 개입해 보도방향을 쥐락펴락하는 뻔뻔함은 공영방송 KBS를 지배하고 있다는 거만함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현재 KBS이사회 여야 7대4 구도는 정권의 방송장악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사장 인사권은 물론 보도와 편성의 주요 책임자를 정권에 우호적인 인물들로 채우기 쉽다. 야당쪽 추천 이사가 아무리 제동을 걸어도 여당쪽 이사들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막을 방도가 없다. 녹취록 파문으로 KBS가 뉴스 이슈로 등장하고, 방송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져도 이 문제를 논의할 이사회가 소집도 되지 않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지배구조 개선의 주요 흐름은 정부·여당에 유리한 이사들의 수를 여야 동수로 하거나, 최소한 7대6으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방송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객관적인 보도를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특히 사장 선임 등 중요 사안은 특별다수제를 도입해 이사 3분의2 동의를 얻도록 제도를 손질하고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보도국장 직선제나 임명동의제로 보도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 제도에서 편집국의 독립과 뉴스의 공정성을 강제할 방도가 없다는 점에서 외압을 막고 내부 역량을 결집할 좋은 방도로 여겨진다.
녹취록 폭로 이후 야당이 방송법 개정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그 출발은 KBS 보도개입 실태를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줄 국회청문회다. 김시곤 전 국장도 국회청문회가 열린다면 추가적인 보도통제 실태를 공개할 뜻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론의 지지를 얻는 지금이 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한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마련의 적기다.
사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KBS만의 문제는 아니다. MBC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구성도 정부·여당 추천이사가 전체 9명 가운데 6명이다. MBC 내부에서 ‘요즘 누가 MBC 뉴스를 보나’라는 자조섞인 한탄이 나오는 것도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를 취재하지 못하는 상황과 관련이 깊다.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방송이 정권만을 ‘해바라기’ 하는 보도를 계속하고, 이를 막을 수 없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KBS 기자들이 기수별로 성명을 내며 보도개입 실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기자들은 “권력에 농락당하는 공영방송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KBS 기자라는 것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단신도 내보내지 않는 보도태도에 분노를 드러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는 성명을 내부망에서 삭제하는 등 통제로 일관하며 정작 보도엔 침묵하고 있다. 기자들은 KBS가 누구의 것인지 묻고 있다. ‘국민의 방송’ KBS인지, ‘정권의 방송’ KBS인지 묻고 있다.
언론의 신뢰는 한순간에 쌓을 수 없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지금 KBS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어느 길을 갈지는 온전히 KBS의 몫이다.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