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도통제에 대한 KBS의 침묵을 바로 이 기자협회보 지면을 통해 비판했던 정연욱 기자가 글을 쓴 지 이틀 만에 제주 지부로 전보됐다고 한다. 의외의 총선 결과 이후 이곳저곳에서 슬그머니 흘러나오기 시작한 ‘레임덕’, ‘정권교체 유력’과 같은 언어들을 무색하게 하는 이 어이없는 보복 인사는 그 언어들이 설사 모두 현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공영 언론의 현실이 결코 쉽게 바로잡히지 않을 거란 걸 강하게 암시한다.
얼마 전 한 해직언론인분과 언론 정상화 이후에 대해 가볍게 논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해직언론인들이 현직에 다 복귀가 되었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동안 공정언론 파괴 보도에 여념이 없던 이들에 대한 책임을 해직언론인들이 앞장서서 물어야 할지, 아니면 해직 언론인들은 공정언론 회복의 상징적 역할에만 충실하고 실질적으로 책임을 묻는 일은 새로 선출된 경영진이 해야 할지를 가지고 의견이 갈렸다.
정연욱 기자 전보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해직언론인들이 해야 하냐, 아니면 새로 선출된 경영진이 해야 하냐와 같은 논쟁은 매우 안이한 접근이 아닐까 하는 생각. 임기 말에도 저렇게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미래가 어떻게 되든 현재에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을 최대한 놓지 않겠다는 저들의 강력한 의지일 텐데, 그렇다면 정권 교체가 된다고 해서 ‘새로운 경영진 선출’이나 ‘해직자들 전원 복귀’와 같은 것들이 이루어지도록 저들이 그냥 지켜만 보고만 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향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정연욱 기자 전보 사태가 하나의 계기가 되어서 지금 당장 새로운 전기로 나아가는 어떠한 발화점이 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너무 오랫동안 버티기에 집중했던 탓이랄까? 분명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의 자리를 지켜내고자 했던 현실적 판단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었으나, 한편으론 그게 너무 익숙해져버려 역설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너무 낯설고 어색해진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니 ‘용기 있는’ 글을 쓰고, 징계나 부당한 인사발령을 당하고 이름이 알려지고...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희망을 보는 것으로 그 언론인을 ‘소비’해버리는 방식에도 역시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그러한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그 본인이 단지 칭찬을 받기 위해 그러한 글을 썼을 리는 없다는 면에서 어쩌면 그 한사람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그 사람의 진의를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이런 고민을 이전에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내게 명쾌한 해답을 준 분이 앞서 소개한 한 해직언론인이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이 한참 언론에 오르내리던 무렵, 해당 언론사에서 관련 리포트가 3일 정도 방송이 되다 경영진의 지시로 내려졌는데, 그 때 한 후배 해직언론인이 푸념하기를 “해직 선배들이 만약 언론사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지금쯤 데스크에 들어갈 연차인데, 선배들이 데스크에 있었다면 해당 리포트를 내리라는 경영진의 지시에 그냥 가만히 있었겠냐?”고 했다는 것이다.
이어 그가 눈을 반짝거리며 하는 말이 “복직해서 돌아가면 그런 부당한 지시가 내려왔을 때 그게 결코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례’를 분명하게 하나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 말을 듣고 무릎을 내리쳤었다. 해직언론인 복직의 이유 중에 이만큼 명쾌한 이유가 또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오늘도 한 건의 기사를 놓고 벌어질 그 모든 논쟁의 순간에 ‘언론인’들의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