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적용을 받는 공직자 ‘등’에 언론이 포함되며 시작된 논쟁이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을 합헌 결정했다. 2015년 3월 공포된 지 1년4개월 만에 법률시비를 없애고 오는 9월28일 시행에 들어간다. 언론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분명 있지만, 우리 사회가 부패와 단절하고 청렴한 사회로 나아가는 변곡점이 될 결정이라는데 토를 다는 언론은 거의 없다.
사실 언론은 ‘제4부’로 불리며 정부를 견제하고 부패를 감시하는 파수꾼 역할을 자임해왔다. 최근 이슈가 된 ‘진경준 사건’만 하더라도 언론이 문제를 파헤치지 않았다면 묻힐 사안이었다. 이외에도 숱한 권력형 비리들이 언론의 보도로 세상에 드러났다. 이점에서 우리 사회의 부패는 언론의 주된 뉴스였고, 청렴은 언론이 지표로 삼은 가치였다. 애초 ‘김영란법’에 박수친 이유이기도 했다. 이후 법 개정을 거치며 공공기관에 언론사가 포함되고, 공직자 ‘등’에 언론사 대표와 임직원이 들어간 과잉입법 논란을 빼면 큰 방향은 공감해왔다.
헌재의 결정문이 법률적 판단 외에 국민 여론을 감안한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만큼 국민들이 언론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높아졌음을 반영하고 있다. 남의 들보를 보려거든 내 눈의 티끌부터 들여다보라는 말이다. 헌재가 ‘언론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구된다’고 본 것은 언론에 높은 윤리성을 요구하는 시대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뒤집어보면 언론의 윤리가 국민들 눈에 그리 높아 보이지 않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언론이 정확한 사실보도와 공평한 잣대로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현실을 보면 그렇다. 좀 심하게 말하면 언론을 법률이 아닌 도덕적 윤리만으로 다룰 범위를 넘어섰다는 인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언론엔 속칭 ‘빨아주는 기사’라는게 있다. 흔히 기업이나 정부, 개인 홍보를 앞장서서 할 때 쓰는 말이다. 홍보성 기사 뒤로 광고흥정을 하는 현실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객관을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풍토에 대한 비아냥이다.
언론이 정부와 기업, 사회의 모든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공적역할을 하고 있지만, 팩트로 설명되지 않는 현실이 분명 존재한다. 민간기업으로서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오는 딜레마다. 이번 헌재 결정은 스스로 공적임무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은 윤리적 실천을 엄격한 공적 잣대로 들이대도 손색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언론자유화 이후 많은 언론이 생기며 민주주의 보루로서의 역할 못지 않게 사주의 이익을 위해 기자들이 봉사해 온 부끄러운 작태가 있어왔다. 기사인지, 협박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내용으로 자본을 으르고 달래며 ‘갑질’ 또한 해왔다.
오히려 잘된 일인지 모른다. 스스로 떳떳하다면 법이 있어 지키고, 없다고 지키지 않을 일 또한 없지 않은가. 호들갑스럽게 불안해하며 떨 일은 또 무엇인가. 이후 과도한 법 집행으로 정당한 언론활동을 제약하고 위축시킨다면 그때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면 될 일이다. 언론 스스로 청탁에 흔들리지 않고, 사회의 공기로 제 역할을 해나갈 계기로 삼아도 나쁘지 않다. 이번 기회에 과거의 적폐로부터 단절할 시간으로 삼는 것은 어떤가.
법 시행까지 1달여가 남아 있다. 과도한 부분은 없는지 여론을 모아 시행령을 손보아야 한다. 그 다음은 언론의 몫이다. 김영란법 합헌 결정을 계기로 언론계도 비윤리적인 취재관행을 쇄신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떳떳해지면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