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대기자

유럽 언론들은 ‘테러범의 얼굴 및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옳은가’로 논란을 벌였다. IS가 이들을 미화하고 선전하는데 일조한다는 우려와 테러의 위험을 실감하고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려면 전달할 정보를 굳이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맞섰다. 이는 테러가 유럽 사회의 일상으로 깊이 뿌리 내리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무어라도 더 해보자는 절박함이었고 언론으로서 고민한 것이 신상공개의 유불리였다. 우리는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사건을 두고 고민했다. 일부 보도기사에서는 ‘성매매’라는 피의사실을 가리키는 용어 대신 ‘과거’, ‘사생활’이라는 용어로 대체했다. 성매매를 ‘과거 사생활’로 지칭하겠다면 탈세는 ‘소득공제 문제’, 편법불법 증여는 ‘가족문제’로 표현해야 할 게다. 그런데 이후 벌어진 대법원 부장판사 사건에서는 ‘성매매’를 키워드로 법원 조직 전체와 판사 전체에게 화살을 날렸다.


이 회장 관련 보도가 선정적 황색저널리즘이 아닐까 고민도 했다. 사적 로맨스가 아니라 성매매 불법행위의 정황이 짙다는 점에서 파파라치식 황색저널리즘으로 치부하는 건 무리다. 전직 대통령 누군가가 재임 기간에 성매매를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보도한다면 그 보도는 황색저널리즘일까? 다음은 당사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는 문제이다. 이는 당사자를 공인으로 볼 것인가, 사인으로 볼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 공인으로 봐도 무방하나 장기간 의식불명이니 계속해 공인의 지위를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더구나 성문제이니 고민은 더욱 깊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게 삼성이라는 기업이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성매매 수발을 조직적으로 수행해왔다는 의혹이다. 이 점은 뉴스타파의 보도가 사적 취향에 관한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를 공적으로 다룬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 다음은 불법적으로 생성된 영상물을 보도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문제제기이다. 이미 뉴스와 탐사프로그램들이 취재원의 동의 없이 촬영한 뒤 얼굴을 가리고 음성을 변조해 보도해 온 관행에 비추어 이 지적은 뜬금없다. 또 적법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은 영상이나 녹음물을 판단과 처벌의 근거로 채택하지 않는 것은 법정에서의 문제이지 증거물로 사실을 확인해 보도하는 것이 책무인 언론에게 엄격히 적용될 기준은 아니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제기와 논박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우리 언론은 무엇을 걱정하는 것일까?’ 이것이 핵심이다. 유럽언론들이 테러를 막기 위해 언론이 조금이라도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이라면 우리 언론은 무엇을 위해 이 사건의 보도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일까? 채홍사 조직을 운용한 삼성의 위신을 걱정하는가? 존경하는 경영인 이건희 회장에 대한 오마쥬인가? 국가경제를 우려하는가? 언론의 정도를 고민하는가? 그것들이 아니라면 집행되어야 할 삼성의 홍보광고 예산과 맺어 놓은 인맥을 고민하는가?


의문을 제기할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롯데의 탈세혐의 정황이 처음 확인됐을 때 지면에 보도한 언론은 2곳뿐이라고 한다. 뉴스타파의 ‘친일인사 서훈내역 공개’도 타 언론사 지면에 소개된 건 경향, 한겨레가 전부라고 한다. 갑을 오토텍에서 벌어진 노조파괴 시나리오 문건도 조중동에는 실리지 않았다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언론의 기준과 보도행태를 보며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지금 언론의 존재의미를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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