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공표, 국기문란이라고?"

[언론 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남불내로’라는 신조어를 최근에 알았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를 줄인 말이다. 그렇다. 예상하다시피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고 비판한 특별감찰관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감찰 내용 유출 의혹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 공표죄를 규정하고 있다. “검찰,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하며 안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즉 기소하기 전에 수사한 내용을 공표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는 것이다. 이는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법원에서 형을 확정받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자, ‘마녀 재판’식의 여론 재판의 부작용을 막자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기본 취지이고, 수사기밀의 유출을 막아 범죄수사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부차적인 효과라고 분석한다.


심석태가 쓴 ‘한국 언론의 품격과 언론 법제’(<<한국언론의 품격>>, 2013)에 따르면 인권 선진국은 ‘피의사실 공표죄’와 같은 조항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심석태는 “건국 초기, 6·25전쟁이 미처 종결되기 전에 형법 제정 논의가 진행될 당시의 혼란스런 시대상을 돌아봐야 한다”며 “당시 경찰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수사를 착수한 뒤 피의사실을 흘려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정작 수사는 마무리 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져 이 조항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또 이 조항을 만들 때 “언론활동을 방해할 것이라는 반대의견도 제기됐다”고 덧붙였다.


이런 우려 속에 탄생한 이 법은 한국에서 이렇게 활용된다. 수사 기관들은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특정인이나 특정사안에 대한 정보공개 요청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죄’를 근거로 거부한다. 빈번하다. 그런데 검찰 등 수사기관은 이 법의 적용에 일관성을 잃어왔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알리고 싶은 수사 내용이 있으면,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지 보도되도록 해왔다. 특히 권위주의 시대에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때 검찰은 정부여당이나 청와대 등의 압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수사 사실을 슬쩍 언론에 흘려서 들끓는 여론을 등에 업고 수사를 마무리하곤 했다. 즉 ‘피의사실공표’는 ‘남불내로’처럼 이중잣대로 쓴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검찰이 이 법을 적용해 기소하는 일은 거의 없어 사문화됐다. 검찰이 피의사실공표가 명백한 사안조차도 수사와 처벌을 자제한 ‘덕분’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6년 5월 정몽구 회장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 내용이 법원의 심판이 나오기도 전에 특정 언론에 통째로 유출된 것이다. 당시 대검 차장이 영장유출 경위를 조사하고 엄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구두 엄포로 끝났다.


또 2011년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의혹,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후보 매수 의혹,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등을 수사할 때도 각종 혐의에 대한 수사 내용이 공표됐다. 특히 전직 대통령에 대한 피의사실공표가 거의 매일 언론에 도배됐을 때 친노 측에서는 ‘피의사실 공표죄’라며 반발했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당연히 ‘국기문란’이라는 문제제기도 없었다.


그런데 검찰이 유독 이석수 특별감찰관에게 ‘피의사실공표’ 혐의를 적용해 수사한단다. 박 대통령은 2014년 ‘십상시 관련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도 ‘국기문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기소된 조응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게 2심 법원은 지난 4월 무죄선고했다. 청와대는 감찰내용 유출 의혹을 강조하며 2번째 국기문란이라고 계속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현직 청와대민정수석이 직무정지도 없이 자신이 총괄하는 검찰의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국기문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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