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의 올 상반기 보고서가 제출되면서 주요 기업들의 CEO 연봉이 공개됐다. 이 중에는 회사가 막대한 적자를 봤는데도 연봉을 올려 수십억 원의 보수를 받아간 사장들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적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경영자 보수 원칙은 실종됐다. 구조조정이나 검찰수사로 몸살을 앓은 대기업 오너 경영인들도 버젓이 고액 보수 상위권에 올랐다.
미국에선 경영인 고액 연봉이 정치적 문제로 떠올랐다.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CEO의 평균 연봉이 일반 직원의 300배나 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하며 주요 선거 이슈로 부각시켰다. 도날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기업인 출신임에도 “CEO들의 고액 연봉은 웃기는 얘기”라며 “치욕스럽다”고 비난했다. 그는 “CEO의 친구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과도한 연봉을 무사통과 시킨다”며 “그런 짓을 끝장내겠다”고 공언했다.
CEO에게 보수나 보너스를 제공하는 것은 경영자의 목표와 회사의 성과를 ‘일치’시키기 위해서다. 이는 종종 경영자의 단기 실적주의를 조장하고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부추긴다. CEO들에 대한 과도한 인센티브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된 이유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조차 “CEO들은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원하지 않는다”며 탐욕을 질타했을 정도다.
이에 따라 미국에선 경영인들의 보수를 제한하는 법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소위 ‘살찐 고양이(Fat cat)법’이다. 살찐 고양이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막대한 연봉과 보너스를 챙긴 탐욕스러운 경영진을 비꼬는 말이다. 살찐 고양이법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보수에 상한선을 두는 ‘최고 임금법’과 경영진의 보수 패키지에 대해 노조나 직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승인법’이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100만 달러가 넘는 연봉에 대해 세금감면 혜택을 없앤 정책은 ‘가장 비생산적인 입법’이란 오명을 들었다. 법망을 피해 스톡옵션 같은 형태의 보수가 확산되고, 연봉이 100만 달러에 못 미치는 경영진이 줄줄이 연봉 인상에 나서면서 오히려 CEO들의 보수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가 최고임금을 제한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업이 임직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심 대표는 “불평등 해소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며 법안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CEO들의 과도한 보수는 정치인들이나 노조가 나서 획일적으로 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고 주주 권한이나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 예컨대 프랑스는 2013년 주주들이 CEO의 보수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say on pay’ 법안을 도입했다. 진정 불평등 해소가 목적이라면 소득세 과세표준에 고액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올리는 ‘조세 처방’이 답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나온다. 악명 높은 강도 프로크루스테스가 행인을 집으로 끌어들여 침대보다 신장이 길면 다리를 자르고, 짧으면 다리를 늘여 죽였다는 얘기다. 포퓰리즘에 기대어 절대적 기준을 설정하고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법은 부작용만 양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