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이 끝난지 열흘 이상 지났지만 13억 중국인은 아직도 감격과 열광에 젖어 있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26개를 땄고 새로운 스타도 적지 않게 탄생시켰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진 다이빙 시상식장에서의 황홀한 프로포즈와 같은 감동 스토리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런 크고 작은 성취들은 한 사람의 영웅 탄생을 위한 전주곡에 지나지 않았다. 올림픽 막판 32년만의 여자배구 우승이란 드라마가 안겨준 흥분과 감격과 감동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일궈낸 감독 랑핑(郞平)은 13억인의 영웅이 됐다.
중국인들은 랑핑에게 숭배에 가까운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각종 매체들은 앞다퉈 커버스토리로 랑핑의 배구 인생을 조명하는 기사들을 쏟아냈고 인터넷에선 중국 고전 역사책의 문체를 본 뜬 ‘사기(史記) 랑핑전(傳)’까지 등장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랑핑 찬양의 대열에 동참했다. 올림픽 폐막 사흘 뒤인 지난 25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선 시 주석을 포함한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총출동해 올림픽 선수단 400여명을 치하하는 행사를 펼쳤는데 이 자리에서도 화제는 단연 ‘뉘파이(女排)’, 즉 여자배구였다. 이튿날 중국의 각 신문 1면에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시 주석이 랑핑과 악수하는 장면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중국인들이 얼마나 여자배구에 몰입했는지는 기록적인 시청률이 입증해준다. 세르비아와 맞붙은 결승전 시청률은 무려 70%에 이르렀다. 채널이 워낙 많아 시청률 2%만 나와도 ‘대박’ 소리를 듣는 중국에선 경이적인 기록이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26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런데 왜 중국인들은 유독 여자배구에 열광한 것일까. 그건 여자배구의 우승이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현대사가 일궈낸 성취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32년만의 금메달 탈환에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한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중국의 힘과 저력, 협동정신(팀워크)과 불굴의 의지를 세계에 과시한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집약한 용어가 바로 ‘뉘파이 정신’이다. 여자배구는 13억 중국인들을 타임머신에 태우고 32년 전, 더 거슬러 올라가 35년 전으로 데려갔다.
뉘파이 정신이란 용어가 처음 쓰인 건 1981년 11월18일자 인민일보 1면에서다. 당시 중국 여자팀은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세계 배구대회에서 7전 전승을 거두고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중국은 난리가 났다. 사흘 연속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축하 시위를 벌였고 완리(萬里) 제1부총리가 공항으로 나가 선수단의 귀국을 영접했다. 인민일보 1면엔 선수단 전원의 사진이 실리고 ‘뉘파이를 배워 중화 진흥을 이루자(學習女排 振興中華)’란 제목의 논설이 실렸다. 그 다음날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부인 덩잉차오(鄧潁超)가 나서 뉘파이 정신을 설파했다.
개혁·개방 직후 중국이 세계를 따라잡기 위해 분투하던 시절, 하지만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국인에게 외부 세계와의 격차는 까마득해 보이던 시절, ‘중국은 능히 해 낼 수 있다’는 자심감을 뉘파이가 안겨준 것이다. 이 때의 우승 주역은 랑핑이었다. 바로 리우 올림픽에서 다시 중국에 금메달을 안긴 대표팀 감독이다. 현역시절 스파이크가 하도 강해 ‘쇠망치(鐵榔頭)’로 불렸던 랑핑의 기세에 눌려 당시 한국팀도 3대 0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중국 뉘파이는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까지 석권했다. ‘죽의 장막’ 속에 은거해 있던 중국이 국제 올림픽 무대에 ‘중화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복귀한 대회에서 따낸 단체종목 첫 금메달이었다. 베이징대 학생 4000여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폭죽을 터뜨렸다는 전설이 내려올 정도로 중국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랑핑은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이로부터 3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중국 여자배구는 추락을 경험했으나 랑핑이 지휘봉을 잡고 다시 일어섰다. 그 때나 지금이나 중국인은 열광하고 있다. 과거의 ‘뉘파이 정신’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면,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올라선 지금은 자신감과 함께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이 보태어졌다는 게 차이점이다. 인민일보 지면엔 ‘뉘파이 정신을 배우자’는 구호가 다시 등장했다. 35년 전에 등장한 구호인 중화 진흥이 이젠 중국 굴기(崛起)의 완성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