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안 쓰고 공부만 했냐는 시선이 있을까봐 조심스러워요. 그럼에도 인터뷰에 응한 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미디어 환경에서 후배 기자들이 꼭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거 사실 멋있는 일이거든요.”
1982년 경인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 1988년 한겨레 창간 멤버로 합류해 어느덧 35년차 베테랑인 김영환 한겨레 기자는 남들은 1개도 갖기 힘든 박사학위를 이달로 2개나 갖게 됐다. “누가 보면 공부 못 해 한이 맺힌 사람” 같지만 그저 호기심과 도전정신으로 시작해 이룬 결과다.
그의 박사학위는 모두 취재 기반인 인천 지역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한겨레에서 주로 인천 지역을 담당했던 그는 항만과 공항이 모두 위치한 물류 도시 인천이라는 특성에 오래 전부터 주목했다. 그러다 인연이 닿아 물류학 공부를 시작했고 2011년 8월 물류학 박사학위를 땄다.
박사학위를 계기로 한때 물류전문기자를 꿈꾼 적도 있지만 몸담고 있는 신문의 성질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는 언론으로 되돌아갔다. 인하대 언론정보학과에서 다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13년 인천경기지역 언론들이 ‘대중일보’의 역사 계승을 두고 첨예한 논쟁을 벌이자 대중일보가 어떤 신문인지 규명해보자는 생각으로 박사 논문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논문 준비 과정이 순탄할 리는 없었다. 필드에서 뛰고 있는 터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는 안식월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말을 이용해 논문을 준비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력도 나빠져 눈 수술도 3번이나 받았다.
무엇보다 힘든 건 자료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었다. 1945년 10월7일 창간한 대중일보는 한문으로 쓰여 있어 활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함께 연구한 인천신문도 보존된 자료가 거의 없어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신문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김 기자는 기사별로 점수를 매겨 신문을 객관적으로 분석했고, 그런 고생 끝에 ‘미군정 시대의 지역신문 성격과 이념적 성향에 관한 연구’ 논문이 완성됐다.
“그동안 대중일보와 인천신문이 어떤 성격의 신문이었는지 분석한 연구는 극소수에 불과했거든요. 이번 연구를 통해 대중일보가 당시의 어떤 신문보다 더 중립적인 시각에서 보도한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신문이지만 우습게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김 기자는 논문을 쓴 이후로 신문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관련 내용으로 포럼을 열자는 제안도 받았는데 그만큼 지역민들은 관심이 있다고 했다.
“강연도 좋고, 지역언론연구소를 만들어서 대중일보 이후의 신문을 연구하고 싶어요. 내년 4월 퇴직하는데 이후에도 그 동안 해왔던 것, 배웠던 것을 잘 써먹고 싶은 생각입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