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저녁, 50대 초중반의 학교 선후배 열 명 정도가 동네 호프집에 모였다. 여유로운 추석 연휴의 끝자락이었지만, 모임의 화제는 단연 딱딱한 두 가지였다. 잇따른 법조비리와 김영란법 시행 임박.
여기에 이어 언론에 대한 성토도 나왔다. 비리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우리 언론이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사실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를 보면 언론은 이미 불신의 대상이 아니라 ‘조소’의 대상이 되어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까지 된 원인은 무엇일까.
# 김영란법 시행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시행령이 확정되기 전에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보도가 많았다. 특히 농수축산업계나 한정식당, 호텔 식당의 매출 하락 등 ‘경제적 부작용’을 걱정하는 기사가 한 때 봇물을 이루었다. 해당 업계의 주장을 ‘단순 소개’하는 기사도 많았지만, 그런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불신과 냉소였다. “기자들이 더 이상 못 받고 못 얻어먹을까봐 반대하는 거겠지.” 신뢰를 찾을 방법은 없는 걸까.
# 시행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도 언론에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기사들이 가끔씩 눈에 띤다. 사전결제 같은 편법들이 등장해 시행의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국민들은 이 역시 언론이 ‘뒷다리’를 잡으려 한다고 삐딱하게 본다. 아마도 일부는 여전히 편법을 동원해 뇌물성 접대를 주고받겠지만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겁이 나서라도 접대를 피하려 할 것이다. 법 시행의 효과는 클 것이다.
공무원들이 “법 때문에 민원인들을 안 만나면 우리도 편하다”고 했다는 며칠 전 기사도 국민의 눈에는 거슬리는 내용이었다. 마치 김영란법 때문에 행정이 올스톱될 것처럼 이야기하는 듯해서 그렇다. 소수 그런 반응을 보이는 공무원이 있다면, 언론이 이렇게 일갈할 수는 없는가. “그런 권위주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가는 국민들이 공무원 감축에 나설 것이다.”
# 기대했던, 김영란법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해외사례 기획기사 시리즈나 TV 프로그램은 여전히 잘 보지 못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언론이 그런 보도를 하지 않아도 이미 인터넷을 통해 생생한 선진국 사례들을 접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직접 ‘기사’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한 예로 영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필자의 친구는 얼마 전 국내의 ‘부작용 논란’에 분개하며 소셜네트워크에 생생한 영국의 모습을 올렸다. “회사 사규에 클라이언트에게 선물을 받을 경우에 대한 규정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현찰은 절대 금지. 선물은 5파운드 이상은 금지다. 요즘 환율로 하면 7500원 정도고…”
최근 그 친구가 다니는 회사가 대출을 받을 일이 생겨서 은행 직원 3명이 심사를 하러 방문했다고 한다. 대접을 잘 해줬을 거 같다고? 아니다. 물어봐서 원하는 사람에게만 머그컵에 커피 한 잔 주는 걸로 끝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은행 직원들은 식사를 하러 자기들끼리 나갔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지네들끼리 어디 가서 뭘 먹고 오는지는 모른다. 그걸 우리가 알 이유도 없고, 걱정할 이유도 없다. 지네들 점심 먹는데 우리가 왜 걱정을 하나.” 생각해보면 이게 정상이다.
그 친구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에서 이렇게 ‘논평’했다. “3만원, 5만원, 10만원은 또 뭔가? 접대 받고, 주고, 선물 돌리는 게 잘못된 거라는 걸 인식했다면, 못하게 해야지 3만원 이하는 받아 처먹어도 된다는 논리는 또 뭔가?” 이게 다수 일반 국민들의 생각이다. 그러니 언론을 불신하고 조소하게 된 거다.
# 다음 주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 이제는 선진국들의 ‘깨끗한’ 사례들을 자세히 소개하며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특집 시리즈 기사와 프로그램들을 신문과 방송에서도 많이 보고 싶다. 그러면 국민들이 다시 우리 언론에 마음을 조금씩 열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