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기 전, 언론에서는 최종후보에 오른 그를 극찬하기 바빴다. 미국과 유럽 주요 언론의 주목에 힘입어 한국 문학이 한류 열풍에 동참하는 것 아니냐는 부푼 꿈들이 넘실거렸다. 그런데 이런 여론에 과감히 반기를 든 기자들이 있었다. 한국일보 ‘복면기자단’이다. 단원 중 한 명인 ‘뻔뻔한 캣츠걸’은 이 소설이 식물성을 여성주의와 연결시킨 데서 다소 전형적이라 했고, ‘낮술 마신 밤의 여왕’은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이라며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복면기자단’은 매달 한 차례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6명이 복면을 쓰고 모여 ‘아연한 맨’ ‘하염없이 싸이(PSY)는 뱃살’ ‘행복하슈렉’ 등등의 익명으로 문화 현상, 콘텐츠를 분석하는 코너다. 스트레이트나 해설 기사로 소화할 수 없는 성격의 기사들을 다루기 위해 엔터팀의 ‘까칠한 Talk’을 모티브 삼아 지난 2월 신설됐다. 지금까지 혜민 스님의 책을 비롯해 편의점 즉석 아메리카노, 쉐이크쉑 버거, 아이돌 입은 문예지 등을 신랄하면서도 경쾌하게 분석했다.
김혜영 기자는 “아이디어를 모으는 과정에서 ‘복면기자단’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며 “실제로 복면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남대문 시장 문구점에 가서 복면까지 샀고 별명도 복면에 어울리는 것으로 지었다”고 말했다.
익명에 대한 우려가 없는 건 아니었다. 복면을 뒤집어쓰고 비평을 한다는 것이 비겁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원들은 복면을 쓰더라도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독자들이 양해해줄 거라 생각했다. 박선영 기자는 “출판, 연극, 문학 등 우리의 취재원들이 사회적 약자가 되면서 언젠가부터 비판을 하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하는 도덕적 검열을 하게 됐다”며 “좋은 말만 하는 주례사 비평을 벗어나 궁극적으로 비판 기능을 회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려와 달리 코너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출판계나 문단 등 취재원들은 복면 속 기자가 누구인지 맞추며 즐거워했고 독자들 중에서도 ‘재미있는 실험이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다행’이라며 공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독자권익위원회에서도 칭찬이 나와 황상진 편집국장이 적당한 소재가 있다면 같은 포맷으로 시도해보라며 다른 부서에 공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복면기자단은 인터뷰 내내 많은 고민거리를 드러냈다. 마감 직후 16층 회의실에서 몇 시간이고 얘기를 나누기엔 적합한 소재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복면기자단은 “다들 몇 시간씩 들여 공부할 만큼 화제가 되는 주제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누가 봐도 잘하거나 명백한 잘못인 경우가 많아 할 말이 없다”면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지면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디까지가 온당한 비판인가에 대한 고민도 현재진행형이다. 분석의 대상이 부당하게 공격받았다거나 억울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복면기자단은 “두세 명이 비판적인 얘기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방어를 한다. 그래서 어떤 기자는 ‘호의 김선생’으로 불리기도 한다”며 “사실 이 코너는 부담스러운 포맷이다. 그럼에도 문화계에서 비판을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