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글은 기자협회보에만 어울리는 글이 될 것 같다. ‘선수’들의 푸념이나 사소한 자기만족에 가까운 글이 될 테니까. 주제는 노벨문학상 취재의 그 때와 지금.
16년 전 일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발표는 10월의 첫 주 혹은 둘째 주 목요일 밤 8시. 2000년 10월의 그 밤, 나는 10년 선배를 모시고 문학담당 2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임무란 다름 아닌 국제부 텔렉스실에서의 뻗치기다. 편집국에서는 아직 인터넷도 와이파이도 의미 없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지금처럼 각자의 노트북에서 한림원 홈페이지의 생방송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기란 어림없던 세상이었다.
뚜뚜 뚜뚜뚜. 마침내 적힌 한 줄. 중국 출신 프랑스 작가 가오싱젠.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전날부터 며칠에 걸쳐 준비했던 예상 후보들 정보는 말짱 도루묵. 중국문학 전공 교수들에게 쉴 새 없이 전화를 돌리며, 정말 불꽃처럼 있는 정보, 없는 정보를 그러모았다.
21년째 신문사를 다니면서도 매일 매일 놀라는 순간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문은 나온다는 것.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날 밤 9시30분의 지방판 마감, 자정의 시내판 마감이 그렇게 완성됐다.
문화부 근무환경에 판타지를 가진 타부서 선후배들도 노벨문학상 발표 당일의 문화부 야근만은 고개를 끄덕거리던 시절이었다. 문화부 전원이 남아 있었던가. 시내판을 마감한 당시의 부장이 호쾌하게 말했다. “다들 한 잔만 말아먹고 가지. 내일도 나와야 하니까, 5분에 한 잔씩 딱 한 시간만.”
노벨문학상이 밥 딜런의 문을 두드린 지난 주 목요일. 나는 이제 문학 담당 2진이 아니라, 부장을 보좌하는 총괄데스크 역할이었다. 텔렉스 시대를 마감하고, 랜선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시대. 하지만 그렇더라도 밥 딜런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동영상 생중계에 등장한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이 스웨덴어로 ‘딜롱’이라 발음할 당시에는 마치 프랑스 시인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았다. 랜선 덕분이 아니다. 문학을 전담하던 3년 전, 작정하고 유력 후보 10인에 관한 전문가 기고를 미리 받아 놓은 적이 있다. 물론 선정되지 않는다면 기약없는 원고이니, 거의 대부분은 헛 품 파는 일이 되기 십상. 헛수고인줄 알면서도 묵묵히 한 삽 더 떴다. 그때 뜬 삽에 밥 딜런이 있었다. 발표 다음날 조선일보 문화면에 실린 시인 강정의 원고가 그것이다.
딜롱이 아니라 딜런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뒤, 동갑내기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딜런, 우리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는구나.” 시인이 운(韻)을 받아줬다. “어스트라다무스, 당신이 전화할 줄 알았어.”
운(運)이 따랐달까. 가끔은 이렇게 노력이 재능을 이긴다.
그 다음부터는 순리에 따라. 부장과 상의해 후배들의 역할을 나눴다. 또 하나의 승부 포인트는 ‘내가 본 밥 딜런.’ 한국 뮤지션들에게 전화를 하게 했다. 당신은 뉴욕의 한대수, 당신은 양평의 송창식, 당신은 서울의 윤형주, 그리고 당신은 ‘블로잉 인 더 윈드’ 전문, 당신은 연보. 이제는 살짝 욕심이 뻗쳐 하루 뒤의 북섹션 주제를 ‘노벨문학상 깊이 읽기’로 결심한다. 예전에 문학평론가 김동식 인하대 교수가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주는 대답’이 좋았다고 했던 기억이 스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직접 쓴 유일한 책. 토요일자 북섹션 톱은 그렇게 결정됐다. 16년 전과 달리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 2016년의 부장. 그래도 마지막 한 마디는 마찬가지였다. 자정을 넘긴 시각. “자, 딱 한 잔만 먹고 가지. 말지는 말고.”
‘자뻑’ 아니냐며 혹 불편하시더라도 1년에 한 번 있는 밤이니 이해들 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