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핫이슈는 소셜 미디어와 빅데이터였다. 오바마 캠프는 뛰어난 빅데이터 분석 능력을 토대로 맞춤형 선거운동을 펼쳐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렇다면 올해 미국 대선의 핫이슈는 뭘까? 흥행성 떨어지는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두 후보가 이렇다 할 신선한 카드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주요 언론들의 ‘팩트 체크(fact check)’ 시도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달 열린 1차 대선후보 토론 때는 미국 공영방송인 NPR이 실시간 팩트 체크를 해 화제가 됐다. NPR은 구글 독스에 토론 발언을 옮겨 적은 뒤 기자와 편집자, 리서처 등이 진위를 가려냈다. ‘팩트 체크’가 덧붙은 NPR의 토론 생중계방송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지난 19일 3차 TV토론까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미국 언론들이 팩트 체크를 했다. 이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상대적으로 거짓말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팩트 체크는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지지부진하던 팩트 체킹 운동이 대통령 선거전에서 관심을 끈 건 2012년이었다. 당시 경선 과정부터 후보들의 거짓말을 가려내기 위해 팩트 체킹 기법이 조금씩 사용됐다. 그러던 것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선 사실상 선거보도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게 됐다. 전통 언론뿐 아니다. 구글 뉴스에 이어 아마존 인공지능 서비스 에코도 ‘팩트 체크’를 도입하기로 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일반 유권자들도 팩트 체크 결과에 대한 그다지 높은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라스무센리포츠 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 중 팩트 체크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팩트 체크조차 정파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에 불기 시작한 팩트 체크 열풍은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언론들이 방기했던 부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언론들은 사실보도란 미명 하에 정치인들의 주장을 가감 없이 전해줬다. 발언의 사실 여부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충실하게 전해주는 역할 쪽에 더 방점을 찍어 왔다. 언론의 이런 속성을 활용한 ‘여론몰이’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언론들이 잘못된 사실을 퍼뜨리는 데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미국의 미디어 학자들은 이런 보도관행을 ‘맹목적 인용 저널리즘(He said/she said journalism)’이라고 부른다. 미첼 스티븐스는 2년 전 출간한 <비욘드 뉴스>에서 ‘매카시즘’이 힘을 얻는데는 무분별한 인용 보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아예 기자들이 전문지식과 정확한 관점을 토대로 한 ‘지혜의 저널리즘’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물론 미국 대선 보도에서 화제가 된 ‘팩트 체크 바람’이 주류로 떠오를 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실시간 전파력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요즘 같은 때엔 의미 있는 흐름이 아닐 수 없다. 충실하게 전달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을 경우엔 악용될 우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팩트 체크가 확산될 경우 최초 보도하는 기자들도 사실 여부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팩트 체크가 객관 저널리즘의 한계를 메워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