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전문가 정신이 필요하다

[언론 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순실 게이트가 나라를 흔들고 있다. 시민들은 대통령 하야를 외치면서 특검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을 호가호위해서 개인의 이득을 취한 정도가 아니라 국정을 농단하고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니 국민들이 받았을 충격을 말로 다하기 어려울 것이다. 철옹성 같던 30% 대의 지지율이 5%까지 떨어졌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런데 이런 최순실 게이트가 가능했던 것은 전문가 정신 또는 전문주의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거대한 권력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아주 작게는 최순실이 규칙을 어기고 비표도 없이 청와대를 무사 출입했다는 점부터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 등 고위 공무원 등을 부릴 수 있었다는 것까지, 모두 그 자리에서 각자가 수행해야만 하는 업무를 배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그들은 직업정신에 반하는 일을 해야 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적극 영합했겠지만 개중에는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현실에 갈등을 겪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라는 맘으로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이 관련된 공무원들의 행태를 보면서 공무원들을 더 이상 전문가 집단으로서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병우 전 수석을 상전 모시듯 수사하는 검찰들의 모습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럼 언론은? 이미 1, 2년 전부터 그 싹이 보였던 최순실의 국정농단 가능성을 알고도 취재하지 않거나 취재해도 권력에 영합한 간부들의 방해로 보도하지 못했던 언론 역시 공무원 사회와 비슷한 현상을 재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런 언론들의 실상을 알게 된 시민들은 언론을 더욱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우병우 수사에서 검찰이 보이고 있는 우스꽝스럽고 기이한 현상은 언론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종편들은 최순실 셀카의 진실을 밝힌다며 출연자들의 셀카를 찍게 해서 그거 가지고 시간을 때우고 있고, 동아일보는 최순실 개인 품성에 주목해 ‘강남에 사는 교양 없고 기가 센 졸부의 모습’ 등등의 표현으로 지면을 낭비하고 있다. 이 엄중한 시국에 언론들이 보여주어야 할 모습은 아니다. 기자들의 질의도 받지 않은 대통령 담화를 중계(보도가 아님)하면서 대통령의 침통한 표정을 강조한 공영방송은 또 어떤가.


기술의 발전은 언론 존재의 필요성을 더욱 악화시킨다. 물론 언론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니 조작이나 거짓 정보의 유통 가능성이 높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대중의 소통이 쉬워지는 기술 환경에서, 전문적이고 조직된 노동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생산 제공할 가능성을 지닌 언론의 존재는 더욱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언론은 신뢰를 스스로 갉아 먹고 있다. 그들의 미래를 붕괴시키고 있다.


그럼 전문가 또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언론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을 앞세운 최순실과 그 주변 인물의 국정 농단의 진실을 취재하고, 검찰의 수사를 감시하는 일 등은 기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이 개인 이익 추구를 넘어 선 국정 농단으로서 다양한 국가 정책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설사 최순실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허수아비’ 정권이 벌였거나 진행 중인 각종 정책이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개성공단 폐쇄, 국정교과서, 위안부 협상, 사드배치, 성과연봉제 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순실 게이트를 제때 취재하지 못했거나 취재해도 보도하지 못했던 언론들은 이런 의제들을 충분히 쫓아가고 있을까? 전문가로서 제 구실을 다하고 있을까? 모든 기자들이 최순실 취재에 투입되지는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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