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를 바로 세울 마지막 기회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고대영 KBS 사장의 입에서 “답변하지 마!”라는 반말이 튀어나올 때 보다 확실해졌다. 지난 10월11일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고 사장의 안하무인격 지시는 KBS 보도본부장이 보도총책임자가 아닌 사장의 명령을 따르는 존재에 불과하며 KBS에서 사장은 조직의 보스처럼 군림한다고 봐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줬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행동이 이 정도인데 KBS에서 어떨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이래라저래라 노골적으로 간섭해도 ‘예스맨’이 돼버린 보도본부 수뇌부는 사장의 뜻에 동조하고 복종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징계는 찰떡공조를 과시했다. KBS는 국민의 방송을 자임한다. 그래서 월 2500원씩 수신료를 받는다. 2014년 KBS가 벌어들인 수신료 수입만 6258억원이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KBS가 수신료를 받을 만큼 역할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대기업 돈뜯기, 인사와 이권개입, 국가예산 ‘쌈짓돈’ 쓰기, 대학 특혜입학 등 비선실세들의 농단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공모한 추악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TV조선, 한겨레, 경향신문, JTBC 등 여러 언론은 재벌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뒷돈을 대고, 비선실세와 청와대가 연결된 증거 등을 속속 보도했지만 KBS는 침묵했다.


KBS는 한겨레가 최초 의혹 보도한 9월20일부터 한 달 동안 최순실 관련 뉴스를 딱 3번 내보냈다. 여야 공방으로 짧게 보도할 뿐 의혹을 검증하는 뉴스는 없었다. 국장, 주간, 부장단 포함해 20명이 참석하는 KBS 보도국 편집회의에선 한 달 동안 누구 하나, 어느 부장하나 최순실의 ‘최’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정수영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지난달 23일 한국언론학회 좌담회에서 “KBS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는 ‘묵살, 뒷북, 물타기’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청와대와 정치권력 눈치보기로 일관한 KBS 뉴스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권력의 힘이 약화되자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특별취재팀을 구성하고 보도경쟁에 뛰어들었지만 KBS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촛불 시민들은 KBS 취재 차량에 ‘니들도 공범’이라고 썼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 아닌 ‘청와대의 방송’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지탄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높은 영향력과 신뢰도를 자랑하던 KBS 보도는 국민적 신뢰를 잃고 무너졌다. 고대영 사장과 보도책임자들은 KBS가 조롱거리로 전락한 보도참사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KBS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대한 구성원들의 실망과 분노는 양대 노조의 총파업 투표가 압도적으로 가결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KBS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지난달 24~30일 실시한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투표인원(2995명) 가운데 85.5%인 256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또 총파업 찬반투표와 함께 실시된 본부장에 대한 신임투표에서 보도본부장 등 6명 모두 ‘불신임’을 받았다.


KBS 양대 노조는 8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 “공영방송 위상 추락에 대한 고대영 사장의 대국민 사과와 보도 및 방송책임자 문책, 정권의 방송장악 진상규명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 쟁취, 고통 분담만 강요하는 독선경영 심판” 등을 내걸었다. 이번 총파업은 KBS를 바로 세우겠다는 구성원들의 결연한 의지표명이다. 우리는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겠다는 KBS 구성원들의 대국민 약속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고대영 사장은 KBS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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