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박준동 기자는 입사 23년차 고참이다. 1999년 노조 전임 사무국장까지 맡았던 터라 굳이 나서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천명의 나이에 노조 전임의 부담을 스스로 짊어진 것은 지금이야말로 언론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기레기라고까지 조롱받았던 기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최순실 게이트 보도로 크게 바뀌었습니다. 검찰도 정치권도 못한 일을 언론이 했으니까요. 언론인들은 ‘우리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편가르기식의 진영론에 빠져 현 정권의 헌정 문란을 방조한 언론의 책임까지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봤다. “정권 말 권력에 대한 일시적 준엄함이 아니라 이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선 기자들이 언론계 변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80년대에 선배들이 노조를 만들었듯이 말입니다.”
누군가 나서야 할 일이라면 확고한 의지가 있고 부담을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그는 판단했다. “진보냐 보수냐의 틀에 가두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기존의 회사 입장과 다른 얘기를 하면 이념과 상관없이 강남 좌파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상명하복의 질서 속에서 저 역시 그동안은 큰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동료들과 뒤뜰에서 넋두리하며 지내다보니 어느덧 세상을 원망할 나이가 아니라 책임질 나이가 된 거죠.”
그는 노조 자체도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한 하나의 제도이므로 인격무시와 부당한 대우를 용납하지 않는 노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또 과거 노조와 달리 막연히 기자들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구호를 외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제도적 뒷받침을 요구할 계획이다. 그는 조합원들의 총의가 모아진다면 편집국장 신임투표제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평기자들의 권한 강화가 언론자유의 요체라고 강조했다. 언론자유는 언론사 사주의 자유가 아니라 기자들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이양 받은 권한이기 때문이다.
박 당선자는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첫 보도 이후 조선일보의 후속보도가 주춤하면서 제기됐던 여러 의혹에 대한 질문에 “그런 것들이 낭설이었음을 증명하는 것도 결국 기자들의 손에 달려있다”며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불편부당과 정의옹호라는 사시를 견지할 때 의혹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기자들이 확실히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합원 간 토론문화 활성화를 위해 “우선 익명성이 보장되는 블라인드 앱 등 토론의 장을 활성화하고 주요 쟁점에 대해 휴대전화 온라인 투표로 조합원의 의견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할 말은 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통하는 언론사에선 강력한 지렛대”라고 덧붙였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