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은 정의를 이길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에 맞서 촛불을 켠 위대한 국민의 승리였다. 국회와 광화문 광장, 전국 방방곡곡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환호했다. 청와대 하늘을 향해 축포를 쏘아 올렸다. 청와대는 깊은 어둠에 휩싸였다. 대통령은 유폐됐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1달 넘게 광장에 대통령을 소환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로 명명하며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헌법수호의 약속을 팽개친 채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적시된 대통령은 자격이 없다며 퇴진을 요구했다. 촛불 민심에 귀 기울이겠다는 대통령은 3차례 대국민담화에서 국가를 위해 한 일이라며 강변했다. 사리사욕을 챙긴 게 없다며 변명만 내놓았다. 촛불은 더 거세게 타올랐고, 국민들은 뻔뻔한 대통령의 말에 분노했다.
국회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은 피눈물이 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매일 밤을 피눈물로 지새우고 있다. 2014년 4월16일, 대통령은 왜 어미의 심정으로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는가. 대통령 자리를 박탈당하고야 피눈물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대통령의 자격은 이미 2년 전 박탈됐어야 했다.
시민들이 모인 광장의 요구는 이미 대통령 탄핵을 넘어섰다. 정경유착과 금수저 사회를 바꿀 희망을 봤다며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개혁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운 19살 청년이 지하철 안전문에 끼여 더 이상 사망하는 일이 없는 사회를 꿈꾸기 시작했다. 여성 혐오 범죄로 숨진 20대 여성을 보고 ‘나는 살아남았다’는 안도를 해야 하는 사회를 바꿀 에너지를 보았다. ‘삼포세대’가 더 이상 갑질 사회와 금수저 사회에 절망하지 않고, 당당하게 미래를 꿈꿀 사회를 만들 과제가 이제 우리 앞에 놓였다. 언론이 등대를 밝혀야 한다.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대통령과 비선이 결합해 국정을 농단한 실체를 쫓아왔다.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추악한 거래는 지금도 장막 뒤에 숨어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 미적대던 검찰 수사도 언론 보도와 촛불 민심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통령을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적시한 것은 바른 판단이지만, 여론이 들끓지 않았다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런 공과에도 우리는 내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동시에 접하고 있다. 바로 공영방송 무용론이다. KBS와 MBC는 게이트 초기부터 수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보도간부들은 특별팀을 꾸리자는 요구를 묵살하고, 사건이 불이 붙기 시작하고야 면피성 보도로 일관해왔다. 국민이 아닌 권력만을 쳐다보는 간부들의 한심한 작태가 공영방송 이름에 먹칠하는 지경에까지 도달했다.
KBS와 MBC 보도국 간부들은 과감히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권력과 한 몸이 돼 정권수호에 급급한 간부들이 탄핵과 이어질 대선 국면을 책임지고 이끌 순 없다. 병사들한테 신뢰를 얻지 못한 장수가 어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는 쉬어갈 수 없다. 국정조사와 특검,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일정이 빼곡하다.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대목이 많다. 추적보도가 뒤따라야 한다. 박 대통령이 퇴진하는 날, 언론은 이번 게이트의 백서를 내놓아야 한다. 진실 추적을 위해 어떤 보도를 했는지 낱낱이 기록해 언론사에 남겨야 한다. 언론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운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 날,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더 열심히 보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