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뼈에 사무치게 혼냈다"

베스트셀러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작가

지난 10월 JTBC는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씨가 연설문에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했다. 이후 대한민국은 급격하게 ‘최순실 게이트’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지난 9일 박 대통령은 탄핵되기에 이르렀다. 그간 미르·K스포츠재단의 비리 의혹과 대기업들의 연루, 대통령의 7시간 등 다양한 의제가 쏟아졌지만, 연설문 개입이라는 국정농단 이슈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연설문은 국정 운영에 있어 주요한 과제이며, 국내외 정치 외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지난 2000년 8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글로 담아낸 연설 비서관 강원국 작가의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14년 책이 나오고 2년간 10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후 주춤했던 판매량은 최근 2달 만에 5만부가 추가로 팔렸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맞이한 국민들이 대통령의 글쓰기를 다시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들은 어마어마한 상처와 배신감을 느끼고 있어요.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과 글을 넘겨주고 국정을 좌지우지 하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이죠. 어쩌면 국민들이 이 책을 찾는 건 손상된 자존심을 치유하기 위한 게 아닐까요. 동시에 돈이나 권력의 도움 없이 오로지 말과 글로 표현한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도 있는 거죠.”


강 작가는 두 대통령을 성실하고 배려 깊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굉장히 소탈하고 편하게 해주려고 하셨다. 때로는 풍부한 유머로 상대방이 긴장하지 않도록 유도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설문을 작성할 때 두 대통령 다 ‘이정도면 됐다’라는 게 없었다. 사전에 철저히 연습하고 여력이 될 때까지 계속 수정했다”고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연설을 역사의 기록으로, 노 전 대통령은 청중과의 교감이라고 생각하셨어요. 그만큼 김 전 대통령은 일관성을 강조했고 노 전 대통령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애드립을 선호하셨죠. 연설문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리더십으로도 나타났어요.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의 손을 놓치지 말고 반 보만 앞서가라’라고 하셨지만,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이 싫어하고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끊임없이 의제를 제안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하셨죠.”


강 작가가 책을 내는 데는 노 전 대통령의 공이 컸다. 연설비서관 재직 시절 끊임없이 책을 내라고 권유를 한 건 노 전 대통령이었다. 연설문을 작성할 때마다 대통령에게 수정 요구를 받고 밤샘 작업을 하며 성장한 글쓰기 실력을 묵히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강 작가는 “2달 동안 책을 쓰면서 예전 일이 새록새록 기억나고 두 대통령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아서 행복했다. (글을 잘 못 써서) 뼈에 사무치게 혼이 난 기억도 난다”고 했다.


강 작가는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분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새로운 내용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분들의 생각을 그분들의 문체로 고스란히 담으면 됐다”고 덧붙였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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