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시상식이 열렸던 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 8건(취재·경제·지역분야) 중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관련기사가 무려 5건을 차지했다. 한 달 전인 11월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 5건(취재·지역분야) 중에서도 4건이 같은 사안이었다. 지난해 9월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해 기자정신을 치열하게 발휘해서 거둔 성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모두 과거에 일어난 일을 뒤늦게 파헤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이미 4년이 다가온다. 그동안 언론이 무엇을 했느냐는 자성과 자괴감 또한 피할 수 없다. 언론이 진작에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했다면 한국사회의 충격과 폐해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청와대가 감추고, 거대 여당이 비호하고, 검찰이 권력의 사냥개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언론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영수 특검이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2015년 7월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찬성 사건이다. 국민연금은 삼성이 제시한 합병비율이 자체 산출한 적정 합병비율에 비해 3400억원이나 손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설득력 없는 ‘합병시너지 효과’를 명분으로 내세워 합병에 찬성한 사실이 드러나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대다수 언론들은 국민의 노후자금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안긴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국민연금에 부당한 지시를 한 박근혜 대통령과 안종범 전 경제수석,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그리고 무리한 합병을 위해 청와대에 로비하고, 최순실에 400억원을 특혜지원(300억원 가까운 돈이 이미 전달됨)한 혐의가 있는 삼성을 싸잡아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삼성은 이런 언론보도에 큰 불만이다. “지난해 6~7월 합병논란 당시부터 일관되게 반대한 일부 언론은 그래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머지 대다수 언론은 당시 삼성의 합병에 찬성하고, 국민연금의 합병찬성을 잘한 일이라고 보도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공격하는 것은 도대체 뭐냐.” 삼성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논외로 하자. 한국언론에게 뼈아픈 것은 동일사건에 대해 극과 극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보도를 한다는 삼성의 지적이 정확한 ‘팩트’라는 점이다.
대다수 한국언론이 삼성 합병 보도에 대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근본원인은 바로 대기업 광고주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언론사 살림살이 때문이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곧 선보일 신간서적의 서문에서 프랑스 ‘르몽드’의 콜롱바니 회장이 언론의 주적 중 하나로 ‘돈’을 꼽은 얘기를 소개한다. ‘돈’은 재정적 독립 없이는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점에서 언론의 주적이다. 한국은 ‘돈’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는 대표 사례다.
국민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파헤친 언론보도에 큰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이는 모두들 언론 위기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한국언론이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한국언론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진정한 위기극복은 불가능하다. 2017년은 우리 언론인들이 독립언론을 쟁취하기 위해 깊이 고민하고 결단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