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보여주는 새로운 저널리즘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대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및 촛불집회 보도를 지켜보며 저널리즘의 새로운 국면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린다. 심사숙고를 거치지 못한 생각이라 거칠지만 양해를 구하며 열거해 보자.


1. “기계적 중립이 아닌 철저한 중립이 강점”이라는 한 앵커의 인터뷰를 읽었다. 월드컵 축구 한일전, 독도 영유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보도에서 한국 언론의 중립은 어딘가? 축구는 이겨야 하고 독도는 우리 땅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막아야 한다. 국정농단으로 지지율 4%에 이른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혁명 앞에서 철저한 중립은 어디인가? 버티려는 대통령과 국민의 가운데가 중립이면 촛불 시민의 뜻과 함께 하는 것은 치우침인가? 중립은 무엇과 무엇의 사이가 아니라 똑바로 서서 압력과 이해에 흔들림 없이 본분을 다하는 것이고 그 본분이란 역사와 국민에게의 헌신이라 생각한다.


2. 이번에 우리는 ‘사주의 언론’ VS ‘기자의 언론’이 펼치는 대결에서 ‘사주의 언론’이 갖는 지리멸렬함과 한계를 목도했다. 대형 방송사는 둔탁했고 보수종편은 여전히 얍삽했다. 권력에 유착해 사실상 국정농단의 한 축을 차지해 온 수구 대형 언론사들의 기득권은 이제야 말로 해체의 길을 걷게 될 거다. 언론 비평가 몰리 아이빈스의 독설을 떠올리는 광경이었다. “기성 언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도 괜찮다. 자살하려 애쓰는 것을 보자니 답답하다.” 그러나 그들은 태연하다. 죽어야 할 이들은 자신들이 무사히 퇴직한 다음에 남는 후배들일테니까.


3. 국민과 언론의 상호관계도 변화를 이어가야 한다. 주갤의 활약에서 보았듯이 국민은 언론행동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을 분명히 했다. 그래도 기성 언론은 자신들만의 영역이 있음을 보여줬다. 권력이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과 관련 자료의 발굴, 정치인·검사·용의자 등 당사자 접촉, 주요 인물에 대한 추적과 잠복, 사실에 접근하고 정리해내는 능력에서 기성언론은 제 몫이 있음을 증명했다. 건강한 민주국가를 위해서는 신뢰할만하고 용기 있는 언론이 존재해야 하지만 그런 언론과 기사를 골라내고 지원하는 시민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고발뉴스’와 ‘뉴스타파’ 등 대안언론의 끈질긴 추적과 탐사가 이뤄낸 가치를 공영방송 수신료에 견주어보면 그 투자가치를 알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이 약간 험하게 표현한 대로 옮기자면 “투견장에서 개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투지’이다”. 투지와 진정성을 갖춘 뉴스에는 시민의 지불과 투자도 필요하다. 그리고 주지 말아야 할 곳엔 주지 말자. 제대로 된 언론과 언론문화를 이끌어내려면 기성 언론들을 지탱해 온 헛된 돈이 깨져야 한다. 국민은 옳다고 판단하는 뉴스룸과 뉴스에 비용과 기금을 마련해 주는 새로운 시민언론운동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쟁점을 폭발시키는 언론사의 뉴스룸에 주목해 지원하고 시민에 의한 뉴스혁명으로 이끌어야 한다.


4. 게이트 정국에서 떠도는 숱한 보도와 소문의 홍수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정보의 출처와 의도를 분별하는 것이다. 정보를 내놓은 언론사나 기관이 이 정보의 보도로 어떤 이득을 얻게 되는지, 어떤 프레임을 원하길래 이런 설명을 늘어놓는지 살펴야 한다. 아니 언론이 그것까지 보도하는 게 마땅하다. 뉴스보도와 논평에서 왜 서로의 기준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그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지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며 지적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편견을 공격하고 폭로할 때 독자와 시청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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