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이니, 2년 전이다. 필자는 이 ‘언론 다시보기’란에 ‘소통과 청와대, 블룸버그의 불펜’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화를 ‘기대’하며 쓴 칼럼이었다. 그 후 2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최순실 사태로 그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청와대는 필자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 글이 기억나 아쉬움과 허탈함 속에 다시 찾아보았다.
칼럼은 이렇게 시작했다. “소통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소통의 구조’를 어떻게 짜놓느냐가 중요하다. 형식이나 틀이 내용을 규정할 때가 많으니 그렇다…” 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유효하다. 소통의 구조, 소통의 틀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틀의 첫째는 ‘대통령의 공간’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세상 속’으로, 대로변 건물로 나와야 한다. 2년 전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참모들이 일하는 위민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었다는 것을 소개하며 나온 대목이다.
“그렇다면 좀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위민관을 가끔 찾는 것에 그치지 말고, 참모들과 한 건물에서 근무하는 거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비서실이 같은 건물에 있는 미국의 백악관처럼 말이다.”
사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왕조 시대도 아닌데,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권한을 잠시 위임받은 한국의 대통령이 구중궁궐 속에서 ‘불투명’하게 근무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우리가 아는 정치 선진국들 중에 이런 경우는 없다.
그 칼럼에서는 이런 제안도 했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기존의 시장실 대신, ‘블룸버그의 불펜’이라고 불린 넓은 홀의 중앙에 앉아 시청 직원 51명과 함께 일했던 것처럼,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는 혁신을 시도해보라는 것이었다. 멋지지 않은가. 비록 ‘쇼’로 시작했다 해도, 틀은 내용을 바꾼다.
두 번째 틀은 ‘대통령의 시간’이다. 대통령이 몇 시에 누구를 만나는지가 공개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대통령은 불편하고 싫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억제할 수 있고, 장관이나 비서관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억지로라도 자주 하게 만들 수 있다.
공개의 방식도 중요하다. 청와대가 입맛에 맞게 ‘선별’해 발표하는 방법이 아니라, 기자들이 체크해 보도하는 일본 정치의 사례가 좋겠다. 일본은 총리 집무실 직통 엘리베이터 앞에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이 ‘뻗치기’를 하며 1년 내내 밤늦게까지 총리의 동선과 출입 인사들을 지켜보며 기사화한다. ‘총리 당번 기자’들이다. 전날의 총리 동선과 그가 만난 사람들 명단이 언론에 의해 공개된다는 얘기다. 일본의 총리도 인간인데 무척 싫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궁극적으로는 국민 여론의 힘이 이런 공개 관행을 지속시키고 있다.
마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며칠 전 청와대 개혁안을 발표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고, 대통령의 24시간 일정을 공개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제 반기문, 유승민, 이재명, 안희정 등 다른 대선 후보들도 ‘소통의 구조’에 대한 공약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머뭇거리면 언론이 적극 요구해야 한다. 그 내용이 국민이 대통령을 고르는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2년 전 칼럼을 다시 보고 허탈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정치가 이렇게 확실하게 ‘바닥’을 드러낸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 받은 충격이 워낙 컸기에 오히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회적인 동력이 강력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최순실 사태로 지지부진했던 한국 정치의 선진화에 획기적인 진전이 가능해질 수도 있겠다. 선진적인 소통의 틀에 한국정치를 강제로 밀어 넣는 과정에 우리 언론이 역할을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