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유탄…기업하기 두려운 대한민국’ ‘경제 파장보다 광장 정서 선택한 특검’ ‘3류정치의 덫…참 기업하기 힘든 나라, 대한민국’. 특검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주요 경제지들이 뽑은 제목이다. 사설 제목은 더 강경하다. ‘우리는 특검의 정당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이재용 구속으로 승부보려는 박영수 특검의 집착’. 특검이 법치와 사법정의를 파괴했다는 논리를 펴며 공세에 나섰다. 이재용 부회장이 특검에 소환된 직후부터 ‘경제위기론’을 부채질하며 불구속 수사 방향까지 제시한 이들 신문들은 특검법이 위헌적 법률이라는 주장마저 펼치며 ‘이재용 구하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삼성 위기론이 급기야 한국 경제 위기론으로 치환되며 이재용이 구속되면 나라가 금방 무너질 것처럼 흥분해서 기사를 쏟아냈다. 삼성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함께 읊어댔다. 삼성의 대변인처럼 행동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과 정유라 승마 지원 등을 위해 삼성이 최순실쪽에 주거나 약속한 433억원이라는 자금의 성격이 첨예한 문제였지만 외면했다. 뇌물인지 아닌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대가성인지 아닌지 법리다툼은 뒷전으로 밀렸다. 법원이 구속여부를 판단도 하기 전에 법원을 압박하는 여론전에 열을 올렸다.
종편들의 ‘이재용 구하기’도 낯 뜨겁긴 마찬가지였다. 경제 악영향을 들먹이며 유전무죄를 옹호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돈 있는 부자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며 이재용 부회장을 마치 억울한 희생양으로 묘사했다. 또 특검이 한풀이식으로 무리수를 두고 수사한다며 근거 없는 공세를 폈다. 박근혜 게이트를 앞다퉈 보도하던 언론이 삼성 앞에서 이성을 잃어버렸다.
정경유착은 정치권력과 기업이 갑을 관계가 아니라 공생 관계다. 기업이 권력에 돈을 주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바란다. 100 대 0 일방적인 거래는 없다. 손해 볼 장사하는 기업은 없다. 미래의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란 확신이 없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에 정통한 경제지들이 삼성 문제를 두고는 비경제적 논리를 들이대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과감히 끊자는 캠페인을 벌이며 삼성 문제를 그 출발점으로 삼자고 주장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특검은 기업을 향해 화풀이 수사하는 곳이 아니다. 어느 신문 사설처럼 ‘기업을 때려잡자며 혁명재판’을 하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대통령이 연루된 의혹이 짙은 국정농단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곳이다. 기업뿐 아니라 블랙리스트, 정유라 입시 비리 등 모든 의혹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 법과 원칙대로 수사하는 곳이다.
수사가 진행되며 실체적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일부 경제지들의 주장처럼 ‘최순실이 아닌 기업 특검’이란 근거는 없다. 수사 본류는 박 대통령 국정농단 의혹이다. 박 대통령이 기업을 겁박해 재단 출연금을 뜯어냈느냐는 중요한 부분이다. 또 기업이 출연금을 내며 정부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았느냐도 뇌물죄와 관련해 핵심적 사안이다. 사정을 모르지 않을 경제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특검 흠집내기에 열 올리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삼성문제에 유난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이 광고주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를 공정한 사회로 만들자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따져보는 일이 먼저다. 정경유착 단죄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도기적 진통이다. 그동안 재벌 총수 수사가 보여준 봐주기 수사, 집행유예, 특별사면으로 이어진 관행을 끊지 않고는 정경유착이 재발할 수밖에 없다. 언론이 기업 편에 서서 여론을 왜곡해서는 ‘촛불’이 언론을 향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