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근대식 인쇄신문인 한성순보가 등장한 이후 한국 언론의 역사는 참 불행하게도 통제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1948년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제헌 헌법에 따라 정부를 수립한 이후에도 그 탄압은 그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들 중 일부만 언급해도, 이승만 정권 당시 경향신문 폐간 사건, 5·16 쿠데타 정권 당시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사건, 3공화국 당시 신동아 탄압 사건, 유신 정권 당시 동아일보 광고 탄압에 이은 동아·조선 기자 강제 해직 사건, 80년 신군부의 기자 대량 해직 그리고 5공의 보도지침에 이르기까지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1987년 6월 항쟁 이후 다른 통제가 부상했다. 정치적 통제는 일견 완화된 모습이지만 자본의 통제가 강화된 것이다. 광고주로서 자본이 언론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해졌다. 김용철 변호사 폭로 사건 기사 이후 삼성의 한겨레, 경향 광고 중단 사건은 언론이 저널리즘의 정도를 실천하다 피해를 입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자본의 눈치를 보아 알아서 기사를 포기하거나 자본의 압력을 받아 슬그머니 기사를 내리는 사례는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언론의 권력화다. 언론 스스로가 권력과 유착하여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고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편파 왜곡 보도를 했다. 언론사의 관점에서 보면 자발적 유착이니 통제가 아니라 할 수도 있지만, 현장의 진실을 취재 보도하는 기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취재한 현실과 보도된 ‘현실’이 다르니 또 다른 (내적)통제일 수밖에 없다.
최근 10여 년은 더욱 열악하다. 공영방송의 언론 장악에서 보듯 정치적 통제가 완벽히 부활했고, 다른 언론들에서도 자본의 통제나 권력의 통제를 내면화하는 간부들에 의해 내적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저널리즘 관점에서 보면 최악의 상황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적어도 명문상으로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는 물론 언론사 외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외적 자유’를 기본으로 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언론의 자유는 내적 자유를 통해서 완성된다. 외적 통제에 저항하는 것도 결국 언론인들의 몫이고, 내적 통제 역시 언론인들의 내부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써 저항할 수 있다. 언론사의 자유보다 언론인의 자유가 더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정치권력의 통제에 있는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저항을 제외하고는 다른 언론에서 내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언론인들이 노력했던 사례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소위 유력 언론에서 내적 자유를 위해 저항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우리 사회의 유력 언론들의 보도는 문제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올바른 저널리즘의 전도사가 되기를 꿈꿨던 청년 기자의 기상이 사라져서일까?
신문은 이미 오랜 동안 위기였고, 최근에는 지상파 등 방송 산업도 위기에 봉착했다고 한다.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꼭 그것 때문만일까? 언론의 본질은 신뢰다. 작금의 한국 언론이 겪고 있는 위기의 핵심에는 신뢰 상실이 존재한다. 수용자가 굳이 특정한 언론을 충성스럽게 봐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래서 역으로 신뢰가 중요하다. ‘언론’으로서 인정받고 생존하려는 언론에게 신뢰는 경쟁력이다. 더군다나 미 대선 과정에 새로운 플랫폼들을 통해 가짜 뉴스가 양산된 사례는 언론이 신뢰 확보를 무기로 권토중래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이를 위해 우리 언론은 현장에서 가장 진실에 근접해 있는 취재·제작자들의 자율성 또는 자유를 보장해야 마땅하다.
내적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를 지키는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언론이 그리고 언론인이 존재하기 위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