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기자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는 2년차 젊은 기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무너진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몸도 정신도 너무 망가져서 더 이상 힘이 나질 않는다”고 유서에 썼을까.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두고 동료들은 신생 언론에 배타적인 출입처 장벽과 실적 압박이 낳은 참사라고 전했다.


출입기자단의 카르텔이 앳된 기자의 청춘을 앗아갔다니 참담할 뿐이다. 부산에서 법원과 검찰을 출입하던 그는 법조기자단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자실 출입을 못했고, 브리핑은 물론이고 공소장, 판결문조차 제대로 제공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알음알음 판결문을 받아 기사를 썼는데, 기자단이 법원 관계자에게 왜 자료를 주느냐 항의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부산기자협회 관계자도 “부산기자단의 카르텔이 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법원 등 공공기관이 언론 자료 제공에 차별을 두는 것도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지만 기자단이 출입처를 압박해 동료의 취재활동을 방해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7개 언론사만 짬짜미해 기자들을 배척하고 따돌렸다니 이런 기자단이 왜 필요한지 묻고 싶다. 기자실 출입을 금지당한 그는 검찰청 커피숍에서 기사를 썼다. 검찰 브리핑 자료를 얼마나 받고 싶었으면 “검찰에서 연락이 오냐. 나는 오지 않는다”고 기자 친구에게 하소연했을까.


그는 해직기자였다. 한 민영뉴스통신사 부산본부는 지난해 4월 그를 포함해 기자 3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업무실적을 내지 못했고 기사 실적이 미비하다며 구두로 해고를 통보했다고 한다. 쥐꼬리 월급을 주면서 기사 빨리 쓰라며 재촉하고, 업무실적을 채근하며, 실적을 못 내자 저성과자라며 쫓아낸 것이다. 부당해고에 반발해 동료 기자들이 줄줄이 퇴사하고 소송으로 이어지는 등 시끄러워지자 부산본부는 그를 복직시키고 나머지 2명에겐 임금·상여금에 위로금을 주면서 무마했다.


출입기자단의 벽을 넘기 위해 외롭게 싸우고 있는 2년차 기자에게 위로는 못해줄망정 실적을 강요한 것은 민영뉴스통신사의 이상한 지역본부 운영시스템 때문이다. 민영뉴스통신사는 대부분 지역본부를 독립법인 형태로 운영한다. 본사는 사업자에게 지역본부 운영권을 주고 광고 수수료 등을 받는다. 언론에 대한 기본소양이나 최소한 책임의식조차 없는 사업자들이 지역본부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지역본부가 임금체불이나 기자 집단해고 등 파행 운영을 하는데도 손 놓고 있는 본사의 책임도 크다. 본사는 소속 기자가 스물아홉의 생을 스스로 마감했음에도 유족이 원한다는 핑계로 쉬쉬하면서 덮기만 했다. 억장이 무너지게도 그는 자신의 부음소식 한 줄 전하지 않은 회사를 위해 사망 전날도 기사를 송고했다. 유서의 마지막처럼 ‘국가기간통신사의 벽에 한없이 작아지면서도 발로 뛰어 조금이나 그 격차를 줄이려’고 애썼다.


부산 영락공원에서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던 동료와 선후배들은 “이렇게 보낼 수 없다”고 통곡했다. 폐쇄적 출입기자 시스템 등 기자사회의 적폐를 뜯어 고쳐야한다. 특권과 반칙을 비판하던 우리가 기자단이라는 알량한 기득권에 취하지 않았는지, 기자의 영혼을 직장에 팔아먹고 그렇고 그런 기자로 살아가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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