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는 자'의 숙명과 대선 검증

[언론 다시보기]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TV드라마를 보다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기자라는 직업이 ‘멋있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멋있지는 않아도 좋으니 심하게 나쁘지 않게만 나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남의 약점이나 캐며 돌아다니는 사이비 기자, 권력이나 자본에 야합해 작은 떡고물을 챙기는 구악 기자가 종종 드라마에 등장하곤 해서다.


반면 사회정의를 위해 고민하는 기자는 최소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주 제법 실제보다 그럴듯하게 묘사되는 의사나 검사 등과 비교된다. 전직 기자로서 가족들 보기에 민망해 드라마 PD나 작가들에게 “왜 그렇게 기자만 미워하느냐”며 대신 ‘항의’하고 싶을 정도다. 그래서 그런 건가, 일반인의 인식도 비슷해진 듯 느껴진다. ‘불가근 불가원’이라 표현해주는 건 점잖은 축에 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렇듯 미움 받기 쉬운 존재가 된 것은 ‘숙명’이다. 팩트가 무엇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묻고 캐야 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다. 사이비 기자, 구악 기자가 아닌 진정한 기자라 하더라도, 묻고 확인하고 따지는 자가 ‘사랑’을 받기 힘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랑은 못 받더라도 ‘존경’은 받을 수 있다. 개인 개인에게는 불편한 존재, 미움 받는 존재가 되더라도, 사실과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공동체의 건강과 발전에 기여한다면 말이다.


기자가 ‘미움 받는 자’가 된 것은 사실과 진실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이 기자를 통해 정확하게, 널리 알려지면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런 자들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건, 그렇다면 감사할 일이다.


대선 정국이 시작됐다. 후보들 모두 ‘멋있는’ 공약을 앞 다퉈 발표하고 있다. 이제 기자들이 본격적으로 미움을 받아야 할 순간이 왔다. 검증이다. 후보 개개인을 검증하고, 그들의 장밋빛 공약을 검증해야 하는 시간이다. 일을 철저하게 하면 할수록 후보 개인은 물론이고 그가 속한 정당, 그의 지지자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제대로 할수록 그 미움의 크기는 커진다.


지난 대선에서 언론은 후보를 검증하는데 실패했다. 기자들은 제대로 미움 받겠다는 각오가 부족했다. 한국을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한 이유다. 검증 부족이 가져온 부작용을 체험했으니, 최소한 이번만큼은 달라야 한다. 후보들 곁에 ‘제2의 최순실’은 없는지, 문고리를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을 ‘제2의 3인방’은 없는지 캐보아야 한다. 후보들이 국민과, 언론과, 참모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토론할 생각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줄줄 쏟아내고 있는 경제와 국방 분야의 선심성 공약은 실현 가능한 것인지, 필요한 재원은 정말 마련할 수는 있는 것인지 따지고 또 따져보아야 한다.


여기에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의 발달로 어려운 숙제가 하나 더 생겼다. 페이크 뉴스, 가짜 뉴스에 대한 검증이다. 이걸 신속히 검증해 거르는 것도 언론이 담당해야 할 임무다.


며칠 전 트럼프 미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서 목격한, 거칠게 몰아치는 대통령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묻고 또 묻는,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한 미국 기자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 기자도 살아 있는 권력 트럼프와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그래도 그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청와대의 기자회견장에서 우리 기자들은 얼마나 순응적이었던가. 요즘 기자가 혹여 권력이 아닌 공동체의 미움을 받고 있다면, 그 이유는 드라마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묻고 확인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미움 받는 자, 제대로 미움 받아야 존경받을 수 있는 자. 그런 기자의 숙명이 공동체의 건강과 발전을 위해 특히 중요한 시기가 왔다. 이제 대선이고, 이제 검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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