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선임을 밀어붙이는 걸 보면서 ‘후배들이 또 아우슈비츠 열차를 타게 됐구나. 다시 독가스실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구나’란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MBC ‘뉴스데스크’에서 특유의 솔직담백한 멘트로 어록을 쏟아내며 사랑을 받았던 최일구 전 앵커가 잡음이 끊이지 않는 MBC의 현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최 전 앵커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고 조기대선이 가시화되며 MBC의 앞날에 희망을 봤는데, 언론장악방지법은 국회에 묶여있고 방송문화진흥회는 사장과 부사장 등 임원진 선임을 강행하는 등 구름만 잔뜩 낀 상태”라고 말했다.
“MBC 출신인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MBC 뉴스는 안 본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오후 8시대 시청률을 보면 1위가 KBS드라마, 2위는 JTBC가 고정돼있고 하위권으로 내려가야 뉴스데스크가 3%대 찍고 있어요. MBC 뉴스와 시사물을 망가뜨려온 인물들이 또다시 경영 일선에 나선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후배들에게 또 징계를 가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앞으로 3년 간 MBC가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봐야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최 전 앵커는 지난 2012년 공정방송을 기치로 내걸고 행한 언론노조 MBC본부의 170일 파업에 동참하며 TV뉴스에서 사라졌다. 당시 파업에 가담한 수십여명의 후배들은 해고나 전보 등의 징계를 받고 보도국 밖으로 흩어졌다. 이듬에 그는 사표를 제출했다. 최 전 앵커는 “어느 언론사보다도 소통과 단합이 잘되는 조직이었는데, 파업 이후 참여파와 비참여파로 나뉘어져 조직 자체가 불통이 돼버렸다”며 “광화문은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돼있지 않나. MBC는 6년째 갈라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987년 땡전뉴스로 MBC가 비난을 받았을 때, 5년 만에 최고의 방송사로 회복될 수 있었던 건 적어도 내부에 적이 없고 모두가 단결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조직 자체가 분산돼 더 어려운 상황이라 걱정스럽다”고 했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는데 MBC만 시대에 역행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워요. 이건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문제라서 정치권이 나서서 해결을 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파업도 MB 정권이 낙하산 사장을 보내면서 일어난 일이었잖아요. 국회가 나서서 언론장악방지법을 통과시키고, 새 정부는 공영방송을 위해 어떤 길을 가야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든 MBC를 떠난 지도 4년. 저자로서 강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늘 MBC를 떨쳐낼 수 없었다고 한다. 최 전 앵커는 “현실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함께하고 싶은) 소망은 있다”며 “MBC에서 시사제작물을 진행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그는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다시 또 눈앞이 캄캄해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참고 견디면서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