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은 유명인이 극적으로 살해됐고,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갖고 처리해야 하는 중대 뉴스다. 한국 언론사 대부분 쿠알라룸푸르 현장에 특파원을 긴급 파견해서 사건을 취재, 보도한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다만 이번 사건의 보도 과정에서 나타난 아쉬운 점에 유의하면서 교훈을 모색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 보도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사건 현장이 외국이기 때문에 현지 언론에 의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현지 언론 보도를 따라가는데 급급하고, 우리의 관심 의제를 설정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난달 20일 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다는 미확인 소문이 나온 이후 3일 이상 김한솔 방문설로 지면을 채운 것은 실망스런 사례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언론 스스로 주목한 관심 의제가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도 토론의 여지가 있다. 이번 사건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심화하는 사건이 될 것이라는 주제는 분단의 현실과 북한의 도발적 행태를 감안할 때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런 주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상시적인 현상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새로운 관심 의제를 발굴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동남아시아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외교활동을 했다는 사실이나 말레이시아의 외교 정책이나 언론 특성, 아니면 북한 정치에서 백두 혈통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심도 있는 보도가 이뤄졌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많다.
관심 의제 설정과 관련해 우리 언론이 김정남을 선량한 희생자로 간주하고, 김정은을 무도한 악당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도식은 위험하다. 김정남은 북한 수령이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이다. 그랬다면 김정남 역시 잔혹한 숙청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현재 북한과 관련해서 벌어지는 문제점은 김정남이나 김정은 개인의 성향도 문제지만, 북한 국내 정치나 국제 환경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더 많다. 차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북한의 구조적 특성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일본 언론의 취재나 보도 역량에 우리 언론이 밀렸다는 자평이 많았다는 점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본 언론의 역량, 특히 북한 문제에서 일본 언론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일본 언론이 부럽다는 말도 이해는 간다. 다만 취재 현장에 가보면, 일본 언론은 한국과 비교해 줄잡아도 5배 이상의 취재 인력과 장비를 투입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취재 행태가 효율적인지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미지수다. 오히려 일본 언론이 중대 오보를 연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 언론사들은 그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자원을 투입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우리 언론사들의 경영 사정을 감안할 때 일본 수준의 취재 역량을 투입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북한 문제는 우리의 중대 사안인데도 일본 언론에 비해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북한 관련 보도 역량을 크게 강화할 필요성이 재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일본을 의식해 인력과 장비를 5배로 늘리자는 주장은 과도한 것이고 2배 정도가 적절하고 현실적인 수준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