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하나둘 오기 시작하면 또 시즌이 시작됐구나 하죠. 오늘만 해도 여러명 다녀갔어요. 귀찮기도 하고 어쩔 땐 안쓰럽기도 하고요.”
지난달 21일 오후 11시45분 서울의 한 경찰서. 야간당직을 하던 A경찰에게 ‘수습기자’ 이야기를 꺼내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 서울 경찰서에는 ‘수습기자의 계절’이 찾아왔다.
수습기자 대부분은 입사 후 사회부 경찰팀에서 4~6개월간 일을 배운다. 이때 하리꼬미와 사쓰마와리를 거친다. 일본어로 잠복을 뜻하는 하리꼬미(はりこみ)는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취재하는 일을, 사쓰마와리(さつまわり)는 일본어 해석 그대로 경찰서를 돌며 취재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 초 입사한 국민일보, 뉴스1, 이데일리, 조선일보, 중앙일보, 헤럴드경제, CBS, JTBC, MBN, TV조선 등 수습기자들은 하리꼬미나 마와리를 하고 있다.
경찰서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이 취재방식은 대표적인 수습기자 훈련 과정이다. 사람 만나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거나 현장취재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기사의 기본인 사건사고 스트레이트를 익히기도 한다.
국내 언론계가 수십년간 고수해 온 이 제도에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비좁고 열악한 경찰서 2진 기자실에서 2~3시간밖에 못 자는 상황, 수습을 빚쟁이로 만드는 과도한 택시비, 지나친 상명하복식 업무체계 탓이다. 끊임없이 지적됐지만 늘 반복된다. 일본 잔재인 하리꼬미, 사쓰마와리를 한국식 용어로 바꿔야 한다는 문제 제기도 매번 흐지부지된다.
언론계를 넘어 사실상 수습기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경찰들은 하리꼬미·마와리 하는 수습기자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달과 이달 초 야간 당직 시간대 경찰서에서 만난 경찰들은 기대와 우려를 함께 표했다.
B경찰은 “처음 경찰서에 온 수습기자들은 겁이 날 것 같다. 우리는 무표정인데 기자들이 보기엔 인상을 쓰고 있다더라”며 “특히 추운 겨울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새벽부터 경찰서를 다니는 걸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C경찰은 “매일 똑같은 패딩 점퍼만 입고 다니던 기자가 수습 떼고 말끔한 차림으로 나타나니 반가웠다”며 “수습 때 친해져 지금까지 연락하는 기자들도 많다”고 했다.
수습기자가 항상 안쓰러운 존재만은 아니다. D경찰은 “기자가 사건사고를 알고 와서 내용을 묻는다면 기꺼이 답해줄 수 있지만 다짜고짜 내놓으라면 어느 경찰이 말하겠느냐”며 “선배가 시켰다는 이유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들도 있다. 선배 말이라면 모두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경찰은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에 몸을 가누지도 못할 만큼 술을 마시고 오는 기자도 있다”며 “입장은 이해하지만 같이 일하는데 매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스스로 절제하거나 선배들이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하리꼬미나 마와리 제도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경찰도 많았다. 경찰의 시각에서 기자에게 이 제도가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고, 개선해야 할 부분을 꼬집은 이도 있었다.
F경찰은 “수습기자 때는 자신이 선배가 되면 (하리꼬미·마와리를) 없애겠다고 하더니 막상 선배가 되면 똑같이 하더라”며 “회사에서 시켜 어쩔 수 없더라도 기자들이 고민해볼 일”이라고 했다. B경찰은 “항상 택시만 타라고 한다던데, 택시비를 전부 주지 않는 곳이 많다는 걸 듣고 놀랐다”며 “반대로 택시비를 모두 지원받는 일부 수습기자들은 경찰서를 오갈 때 일부러 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격차가 크다. 언론사가 고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바로 옆에서 언론계를 지켜본 이들의 지적은 기자사회가 곱씹어볼만한 것들이었다. G경찰은 “기자가 힘든 직업인 걸 알려주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잠도 재우지 않고 혹사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선배들은 자신이 해온 걸 후배들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E경찰은 “경찰조직은 변하고 있다. 수습기자들에게는 교육 현장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라며 “그렇다면 기자조직도 달라져야 한다. 옛날 방식을 가장 오래 고수하는 게 기자들”이라고 했다. H경찰은 “사회부라면 새벽에 경찰서를 기웃거리지 말고 어려운 사람이 있는 곳을 가야한다는 생각”이라며 “화재나 검거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