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에 취재진 술렁

[헌재, 탄핵심판 선고 현장]

운명의 날,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4시간 앞둔 10일 오전 7시쯤 서울 종로구 헌재 인근에선 대규모 경찰병력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삼엄한 경비 속에서 헌재에 다다르기까지 신분 확인을 수차례 받아야 했다. 주변 곳곳에 차벽을 이룬 경찰버스가 세워져 있었고 그 뒤편으로 탄핵 반대 집회가 한창이었다.

 
헌재 정문과 현관 앞은 취재진으로 가득했다. 재판관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방송사 기자들은 헌재 현관 앞쪽에 자리를 잡고 현장을 생중계했다. 해외 취재진도 헌재를 찾는 등 대통령 탄핵 사건에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었다.


취재기자들은 헌재 1층 대강당이나 2층 브리핑룸, 심판정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각각 156석, 120석인 대강당과 브리핑룸에 기자들이 가득 들어찼다. 이곳들엔 심판정을 중계하는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브리핑룸은 차분하면서도 분주한 분위기였다. 기자들은 탄핵 여부를 쉽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 경우의 수에 따라 사전에 준비한 자료나 기사를 점검하고 있었다. 오전 9시 헌재 관계자가 브리핑룸을 찾아 주문 낭독이 끝나기 전 결과를 단정하는 보도를 삼가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오전 10시40분쯤부터 심판정에 변호인단, 기자, 방청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10분 뒤에는 방청객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브리핑룸을 비웠던 기자들도 하나둘 자리로 돌아왔다.



오전 11시 정각이 되자 심판정을 비추던 스크린에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등장했다. 이 대행이 "지금부터 '2016 헌나1'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다"고 말문을 열자 기자들의 손가락이 노트북 자판 위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브리핑룸에선 이 대행의 목소리와 기자들의 타자 소리만 들렸다.


헌재 재판부는 대통령의 언론자유 침해, 세월호 사건 생명권 보호의무 등에 대해선 증거가 부족하거나 탄핵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공직후보자 임명에 관여하고 청와대 문서를 받아본 점, 대기업에서 거액을 출연받아 재단을 설립한 것 등은 대통령이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 대행은 "피청구인인 대통령은 최씨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며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들을 단속해왔다"고 했다.  


이 대행은 "피청구인의 법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해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밝혔다.



그 순간 기자들이 술렁였다.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더라도 '6대2'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기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예상치못한 만장일치 파면 결정에 놀라움을 표하는 기자도 있었고 짧게 박수를 친 이도 있었다. 이 대행의 주문 낭독은 1시간 가량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0분 만에 끝났다. 파면이 결정된 피청구인은 곧바로 '박 전 대통령'이 됐다.

 
선고 이후 안창호 재판관은 언론에 배포한 '보충의견'에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정치적 폐습"이라고 비판했다.


안 재판관은 "피청구인에 대한 파면 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반으로 한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우리와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바르게 세워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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