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언론은 언제 인양될 것인가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우리는 열심히 얼쩡거렸다. 진도체육관은 ‘유족 반 기자 반’이 되었다. 우리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세월호에서 막 구조된 학생들을 쫓아다녔다. 혹시 기사가 될 만한 멘트를 딸 수 있을까 해서 마이크와 녹음기, 취재수첩 등을 들이댔다. 생사의 고비를 막 빠져나온 이들에게 ‘심경’이라는 것을 물었다. 희생자 가족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얘기되는 사연이 있을까, 나만 ‘물 먹고’ 있는 기삿거리가 있을까, 혹시 특종을 가지고 있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얼쩡거렸다. 욕 먹고 쫓겨나도 동료가 들어가면 또 슬그머니 따라 들어갔다. 영상을 확보해야 한다며 구조된 승객들을 탐문하기도 했다.


우리는 열심히 물어보고 받아썼다. 구조 상황에 대한 정부와 해경의 발표를. 유병언과 구원파 수사에 대한 검찰의 발표를. 빨리 그들의 발표를 챙겨 [속보]로 내보내야 했다. TV자막으로, 인터넷으로, 모바일 알림으로. 실제 ‘팩트’인지 검증할 시간은 없었다. 의지도 없었다. 현장에서 취재 중인 일부 기자들은 ‘구조자 수가 틀린 것 같다’ 보고했지만, 또 희생자 가족들은 ‘구조가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외쳤지만, 거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물어보고 받아썼다. 오로지 정부와 해경, 검찰을 상대로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어떤 점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권력이 관계된 지점에 있어서였다. 대통령이 현장에 내려와 유족들을 만났을 때, 그를 향한 희생자 가족들의 반발을 축소해 보도했다. 지체되는 구조에 대해 항의하며 청와대로 행진하려 한 가족들의 움직임은 보도하지 않았다. 구조를 놓고 해경과 국방부가 빚은 혼선, 구난업체 선정 과정 의혹 등은 외면했으며, 희생자 가족들의 기자회견 및 농성현장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치웠다. 진통 끝에 출범한 세월호특조위의 진상조사 역시 제대로 취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악몽 같은 ‘전원 구조’ 오보를 냈다. 부모와 오빠를 잃고 홀로 남은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를 인터뷰했다. 사망자들의 보험금 수령 액수를 추정 보도했다. ‘아무도’ 구조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사상 최대 구조작전’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을 향한 유족들의 항의 볼륨은 확 줄이고, 대신 박수소리 볼륨을 확 키웠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동일본대지진 희생자 가족들에 비해 평정심이 부족하고 조급하다며 비판했다. 장기간 단식중인 유족을 상대로 ‘아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는 뉘앙스로 보도했다. 특조위의 조사 내용은 외면하면서도, 특조위에서 간혹 튀어나온 ‘막말성 발언’은 깨알같이 챙겼다.


그렇게 우리는 ‘기레기’가 되었다. 사실확인 없는 받아쓰기, 비윤리적·자극적 취재, 권력 편향적 편집 등 고질적으로 누적돼 온 문제들이 일거에 엉키면서 한국 언론은 침몰했다. ‘보도 참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참사의 진상을 성역 없이 규명하고자 노력하며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한 언론이 있었지만, 결코 이런 언론이 대세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3년 만에 세월호가 인양됐다. ‘보도 참사’의 주역 언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삼스럽게 물적·인적 자원을 대거 투입하고, 일부 방송은 헬기 촬영으로 생생한 인양 화면을 확보했다며 홍보에 나선다. 종일 특보를 하면서도 희생자 가족들의 기자회견만은 중계하지 않는다. 인양 비용을 따지거나 선체조사위원회 구성을 문제 삼고, 대선 영향 등 정치적 후폭풍을 우려하는 보도들도 있다. 그래서다. 상처투성이의 처참한 세월호를 보며 자문한다. 침몰한 언론은 언제 인양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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