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우리 언론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언론이 객관적으로 진실에 접근하려 애쓰고는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도 대중이 언론에 대해 그런 허상을 갖도록 유도해왔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국민은 언론이 엉뚱한 기사를 내보내면 ‘오보’라 한다. 실수했다는 의미이다. 사심(私心) 가득한(?) 뉴스에도 ‘왜곡’이라고 한다. 정파나 이념에 의해 치우쳤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여기에 ‘가짜’가 추가되었다. 이리되면 자칫 저널리스트는 ‘기레기’가 아니라 반사회적 애물단지로 낙인찍힐 지도 모르겠다. 과한 표현일 수는 있으나 미국의 언론비평 저술에는 이미 1990년대에 저널리스트들을 겨냥해 “사람들의 허영심과 무지와 고독을 먹이로 삼는 일종의 사기꾼들”(쟈넷 멜컴, <The Journalist and the Murderer>)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였다.
검찰이 집중단속에 나설 것이라 하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가짜뉴스’는 ‘가짜 언론사’와 ‘가짜 기사’ 크게 둘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가짜 언론사는 언론사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버젓이 기사를 생산하는 집단. 또 언론사라 부르기도 민망한 존재인데 쏟아내는 기사마저 의도성 짙은 엉터리 기사인 사이비 언론사의 문제다.
둘째는 가짜 언론사가 아닌 기성 언론이라 부를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황당한 기사들이다. 불순한 의도에서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퍼뜨리려는 기사들인데 실수나 왜곡일 뿐이라고 두둔하기가 다소 벅차 보이는 것들도 있다.
가짜 언론사, 가짜 기사에 대한 해법은 무얼까? 당연히 가짜 기사를 추적해 작성자와 발행인을 처벌하거나 언론사를 처리하는 방법이 있겠다. 이때 기자나 발행인 개인을 개별 기사와 관련지어 처벌하는 것을 넘어 언론사까지 정부기관의 판단에 맡겨 처리하는 것은 타당한 걸까? 기자협회 등을 통한 자율정화의 방법은 없을까를 궁리해야 한다. 가짜뉴스를 걱정하는 독자와 시청자에게 협회에 등록된 신뢰할만한 기성언론의 보도만 골라 접하라고 충고하려면 그런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럼 기성언론의 가짜 기사 내지는 가짜 비슷한 기사들은 어찌 할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진실 보도에서 기성 언론이 아닌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실은 어떤 특출한 전문가나 독자적인 뉴스기관에 의해 결정되는 가치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보가 집단적으로 공유되어 의견과 주장들이 넘쳐나는 ‘사회적 공유’ 한가운데서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기사를 내보낸 뒤 기사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부족한 것을 보완함에 있어 독자와 시청자를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개방성의 문제다. 독자는 기사에 댓글만 다는 것이 아니라 기사를 구체적으로 이렇게 고쳐야 한다고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언론사와 다른 독자들이 공개된 장에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기사를 쓴 기자와 데스크, 이후 참여한 시민 독자가 그 기사의 공동작성자로 인정받아야 하고 책임도 공유해야 한다. 시민을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로 받아들여 보도과정의 한 축으로 참여시키는 시스템을 상상해 본다.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가 독자와 시청자에게 펀딩과 정보만 요구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오만한 구체제에 머물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떠올려본다. 저널리스트가 진실을 최상의 가치로 놓고 그것만을 추구한다면 진실에 접근하도록 돕는 사람이 데스크나 동료 기자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파트너로 삼는 것이 부적절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국민에게 정직하고 진실하고자 한다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새로운 저널리즘의 형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