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MBC에서 벌어진 일이다. <뉴스데스크>의 서로 다른 리포트에 방송된 ‘복수’의 취재원 육성이, 사실은 ‘동일 인물’인 것 같다는 제보가 기자협회와 노조에 전달되었다. 날짜와 기사 내용이 전혀 다른데도, 한 인물의 육성이 여러 인물의 육성인 것처럼 조작된 것 같다는 제보였다. 방송뉴스의 신뢰성 자체를 흔드는 중대한 의혹이다. 확인 결과 기자협회와 노조는 제보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보도국을 향해 진상 파악을 촉구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감사에 나선 MBC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국의 1차 의뢰 결과 두 군데 전문업체는 모두 해당 육성이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정한 바 있다. 그런데 감사국은 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1군데 업체에 조사를 의뢰했다. 여기서 ‘동일인일 가능성이 낮다’는 판정이 나왔고 감사국은 이것을 최종 결과로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감사를 맡았던 감사인 1명이 감사국 외부로 전보되기도 했다. 경영진은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 모로 석연치가 않다.
이렇게 의혹을 덮은 MBC 경영진은 문제제기의 당사자였던 김희웅 당시 기자협회장과 이호찬 노조 민실위간사에 대해 “불법으로 유출된 자료를 회사에 신고하지 않고 청취했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가 어제 갑자기 취소했다. 사전 징계 통보 및 이의신청 접수 등 인사위 회부를 위해 필수적인 절차를 빠트렸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징계 방침 자체가 무효화된 것은 아니며, 경영진은 해당 절차를 거친 뒤 다시 인사위 회부를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 편의 촌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MBC 경영진은 또 지난해 유튜브 영상을 통해 최순실게이트 관련 자사 보도를 공개 사과한 곽동건, 이덕영, 전예지 기자도 인사위에 회부했다. 이들이 고발한 것은 오늘날 MBC의 현실이었다. 취재현장에서 시민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MBC 기자의 현실, 전 국민이 분노하는 이슈에 대해 자체적인 취재와 보도를 포기한 MBC 보도의 현실, 파업 이후 해직기자와 징계자가 다수 발생하고 상당수 기자가 뉴스 생산업무에서 축출된 MBC 조직의 현실 말이다. 이와 함께 ‘탄핵 특집 다큐멘터리’ 불방 사태 등과 관련해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던 송일준 PD협회장 역시 인사위에 회부되었다.
경영진은 이들이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니, 회사에 미리 신고하지 않고 외부 언론과 인터뷰를 했니 하며 이런저런 사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경영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문제들은 외부로 알려지기 전에 미리 내부에서 문제제기 및 공론화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영진은 이러한 비판과 견제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묵살했다. 그러다 내부에서 들끓던 문제제기가 외부로 흘러나오면 무슨 규정을 위반했니 하면서 징계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을 향한 어떠한 비판이나 견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에서, 북한식의 중앙집권적이고 일사불란한 방송을 이들은 희망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보기에 ‘거함’ MBC는 분명 침몰하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방송가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대선후보 TV토론회를 지상파인 KBS, SBS는 물론 종편인 JTBC도 주최하는데 MBC가 빠진 것이 상징적이다. 뉴스 등 보도프로그램의 부진과 영향력 하락은 회복될 기미가 없고, 드라마·예능PD들의 이탈은 계속되고 있다. 한 마디로 존재감이 없는 방송이다. 전 구성원의 경험과 지혜, 활기를 모아 위기를 극복해 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MBC 경영진은 ‘다른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데만 열중하고 있으니 과연 이 침몰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