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대선보도, 변화가 시급하다

[언론 다시보기] 진민정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이사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정치인이었던 빅토르 위고는 1848년 9월, 국회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끄는 두 축은 언론의 자유와 선거권이라고 주장했다. 위고는 자유로운 언론 없이 정당한 투표 또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참된 언론이 없는 상황에서 형식적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합법성은 무지와 맹목적인 선동, 진실 은폐의 산물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선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답답한 마음으로 위고의 주장을 다시 떠올려본다.
모든 선거에 대한 보도가 중요하겠지만 특히 대선보도는 대통령을 뽑는 유권자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중요하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지난 대선에서의 잘못된 선택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로 인해 마련된 보궐선거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데 언론이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했던가.


언론의 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반성은 이번 대선보도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언론은 여전히 구도 싸움, 네거티브 공방, 가십성 기사처럼 대선후보들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에만 골몰하고 있고,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여론조사에 대한 경마식 보도도 포기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서 가능성 없는 양강구도를 가정해 산출한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이 구도를 반복적으로 부각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선거의 주인공인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극히 드물다. 유권자를 만나 현장취재를 하는 경우에도 유권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표심 읽기에만 급급하다. 그러다보니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쟁점이나 공약에 대한 해설이나 분석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보도의 문제는 비단 우리 언론의 전유물은 아니다. 각국에서 언론의 선거보도에 대한 비판은 냉혹하다. 프랑스도 선거 때만 되면 언론이 주요 쟁점이나 정치적 토론을 이끌만한 질문보다는 주요 후보들의 개인사나 이들이 연관된 사건들에 관한 보도로 지면을 채운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러한 보도태도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이끌고 언론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언론의 위기에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을까. 최근 프랑스 대선을 보도하는 프랑스 언론의 태도에 변화가 찾아온 듯하다.


예컨대, 몇몇 언론들이 대선관련 여론조사 의뢰를 중단한다거나, 여론조사를 지면에 싣지 않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프랑수아 피용 전 프랑스 총리의 공화당 대선후보 결정 등 여론조사가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가령, 르 파리지앵은 지난 1월, 여론조사 의뢰 중단을, 공영라디오 방송인 프랑스 블루는 웹사이트에 여론조사 결과를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자명하다. 여론조사보다는 유권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현장 저널리즘’에 집중하면서, 정치적 토론을 활성화하는 저널리즘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유권자를 중시하는 언론사는 이들만이 아니다. 르몽드 역시 현장르포를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지난 9월, 유권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평범한 프랑스인들의 목소리와 관점, 이야기를 전하는 ‘프랑쎄즈 프랑쎄(Françaises, Français)’라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러한 변화가 불신의 늪에 빠진 언론을 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신뢰 회복에 애쓰는 이들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이들보다 우리 언론의 변화가 더 시급하다고 여기는 건 단순한 착각일까. 더 늦기 전에, 독자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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