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 동안 공영언론들이 그 힘을 잃었다. 언론의 힘은 자유로운 비판에서 나오는 것인데, 사장의 불법 편법 퇴출에서부터 낙하산 사장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기자들의 강제 해직에 이르기까지 공영언론들은 권력에 장악돼 목소리를 잃었다. 이명박 정권 당시 청와대의 한 수석은 공영방송이 국정 홍보를 담당해야 한다는 비민주적 언론관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는 이미 5년 동안 길들여진 공영방송의 신용비어천가가 있었다. 그리고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됐다.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구실을 제대로 못한 언론도 큰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국정농단과 국민의 저항을 겪고 치러진 대선이니, 차기 정권에는 좀 나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공영언론의 몰락이 안타까운 이유는 공영언론의 중심잡기가 정말 필요한 시점에 그 구실을 하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미 대부분의 언론들은 정치적 간섭이 없어도 시장의 압력으로 인해 언론 본연의 기능을 잃어 갈 상황이었다. 많은 언론들은 클릭 언론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좀 사정이 나은 언론들도 ‘저널리즘 퍼스트’가 아니라 너도나도 ‘디지털 퍼스트’나 ‘모바일 퍼스트’를 외치는 상황이 됐다. 플랫폼이 디지털로 이동하는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디지털 퍼스트를 강조하면서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을 지키려는 의지를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이유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당위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언론이라 자임하는 기업에게는 생존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의 대부분은 신문방송을 직접 수용하지 않는다. 20대 중 일부는 전통적인 매체보다는 SNS를 주요 뉴스원으로 간주한다. 민주주의의 소통 수단으로서 언론의 기능은 점점 약해진다. 그 원인을 디지털, 모바일이라는 기술적 요인으로만 돌릴 것인가. 포털에, SNS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업자로 전락해 시장의 요구에 맞춰 기사를, 제목을 바꾸는 언론 스스로의 책임은 없을까? 사실 지금처럼 정보 제공 수준에 머물러 있는 대부분의 언론 현실을 고려하면 언론이 별도로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매우 당위론적 구호에 불과해 보인다. 로봇이 기사를 쓰는 세상이다. 단순 정보 제공 수준의 기사로 경쟁이 될까? 언론의 미래가 안 보인다.
언론의 전문성이나 심층성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포털과 SNS에 그 길을 내주고 사라져가지만 무가지가 한때 성황을 이룬 적이 있다. 이들이 공짜라서 경쟁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 언론이 내용에서 그다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적 차별성이 경쟁력인데 말이다.
작년 미국 대선 이후 가짜 뉴스가 화두다. 탄핵 정국에서 우리 사회의 가짜 언론도 진화(?)했다. 거짓 정보의 유포가 아니라 아예 제호를 가진 신문 형태의 가짜 뉴스가 등장했다. 그래서 대선을 앞두고 많은 언론들이 팩트 체크(사실 검증)를 별도로 진행한다. 그만큼 가짜 뉴스의 피해가 크다는 현실 인식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사실 검증만으로 가짜 뉴스를 극복할 수는 없어 보인다. SNS같이 빠르고 넓게 정보를 확산시킬 수 있는 기술 기반이 있어 엄청난 양의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는데, 사실 검증만으로는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신뢰할만한 언론의 존재만이 궁극적으로 가짜뉴스의 유포와 그 피해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결국 올바른 저널리즘의 회복을 통한 차별적 경쟁력 확보만이 생존의 길이다. 그런데 수익성을 쫓는 경영진이 모바일 퍼스트라는 단기적 대책이 아니라, 저널리즘 회복이라는 장기적인 대책을 채택하리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 힘은 ‘기자’이고 싶어 하는 기자에게서만 올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