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책공약집에는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겠습니다”라는 국민과의 약속이 담겼다. 세부 사안을 보면 △언론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KBS·MBC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추진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확보 추진 △특혜 없이 종합편성채널과 지상파 방송을 동일하게 규제하는 체제로 전환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에서 억울하게 해직·정직 등의 징계로 탄압받은 언론인에 대한 명예회복·원상복귀 및 언론탄압 진상규명 추진 등이다. 이 같은 언론개혁이 하나하나 이뤄지는 게 적폐 청산과 민주주의의 회복으로 가는 길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일을 숱하게 봐왔다.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그럴싸한 선언만 던져놓고, 당선된 뒤 슬그머니 폐기처분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을 1년도 안 돼 파기시키는 몰염치를 보였다. 애초 의지조차 없었던 게 분명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언론자유는 추락했다. 게다가 마구잡이로 양산된 가짜뉴스(fake news)가 창궐하면서 미디어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권은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를 횡행하며 공영방송을 장악했고, 공정보도를 외치며 투쟁했던 많은 기자들이 징계를 받거나 해고됐다. 최근 들어서도 MBC 막내 기자들은 최순실 게이트 보도 참사 반성문 동영상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경인지역 민영방송인 OBS는 경영난을 빌미로 13명의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는데, 노조 무력화와 방송장악을 위한 의도적인 조치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기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얼마 전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7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180개국 가운데 63위를 기록했다. 역대 최저인 70위였던 지난해보다 조금 상승하긴 했으나 10여년 전인 2006년 31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퇴보한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 결과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까지 국민들은 언론, 특히 권력의 나팔수 역할에만 충실했던 공영방송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취재하던 MBC 기자들은 떳떳하게 명함을 내밀 수조차 없었다.
광장의 촛불 민심이 만들어낸 ‘개혁 대통령’ 시대가 이제 출범하게 됐다. 갈등의 골을 넘은 협치의 리더십과 함께 ‘비정상의 정상화’는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다. 그 중 언론개혁의 첫 실행은 국회에 계류 중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언론장악 방지법)의 조속한 처리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방송환경이 만들어지는 걸 회피하지 말고, 낙하산 인사 근절로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아직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기자와 PD들을 시급히 원위치 시켜야 한다.
언론노조가 전달한 ‘언론적폐 청산과 미디어 다양성 강화를 위한 정책 제안서’도 귀담아달라. 이 제안서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해직자 복직’ 등의 언론적폐 청산 외에도 미디어 규제체제 개혁, 공영방송의 자율성 강화, 민영방송의 공적 책임 강화, 미디어의 지역 다양성 강화, 미디어 광고시장의 공적 영역 확보 등이 포함됐다.
선거 전날 밤 마지막 유세장소인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개혁이 먼저다. 박근혜 탄핵되고 구속된 것 말고 우리 대한민국이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재임기간 이 마음가짐을 한 순간도 잊지 말라. 5년 뒤 대선에서 또 다시 같은 공약이 나오는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언론이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에 충실한 ‘워치독(watchdog)’이 되는 시작은 바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