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언론, 억울해 하고 원망하는 함정에 안 빠지길"

김민하 전 미디어스 편집장 인터뷰 Q&A

전화통에 불이 났다. “두세 통만 받으면 몇 시간이 갈 정도”라는 토로가 나온다. 기사나 SNS 계정에는 댓글이 폭발한다. 최근 ‘한경오’로 대변되는 진보언론, 그곳 기자들이 겪고 있는 일이다. 대부분은 항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사표시다. 이 격앙과 분노, 원망에 기자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고, 정권은 교체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 표지 사진이나 영부인 호칭 논란, 일부 기자의 SNS 발언은 이 사태의 본질은 아닌 거 같았다. 뭔가 더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민하 전 미디어스 편집장에게 물었다. 이 열광적 지지자들이 드러내는 감정, 그 이유, 그 너머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여기서 언론이, 기자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는 매체를 비평하고, 정치에 대한 평론을 한다. 최근 ‘냉소사회’를 비롯해 여러 정치·문화비평 책을 냈고, 자·타칭 게임 ‘오타쿠’이기도 하다. 언론운동, 팬덤정치, 미디어윤리, 사이버공간에서 구성되는 서사 등. 이 사태를 볼 수 있는 시선의 방향은 다양하다. 지난 19일 서울 은평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전 편집장은 많은 말을 쏟아냈다. 지금 여기에서 언론이 정치, 독자(시민)와 관계 맺는 근원적인 방식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이 사안을 어떻게 보고 있나. 
"그렇게 새롭고 놀라운 일은 아닌 거 같다. 늘 있는 일이다. 메르스가 터지면 메르스 전문가가 되고, 황우석 사태가 터지면 줄기세포 전문가 됐던 것처럼 대선 기간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면서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과정인 거 같다. 그래서 시간이 좀 지나면 여론의 반발도 좀 잦아들 거라 생각한다. ‘이러다 말겠지’가 아니라 문제의 방향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정도는 줄어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정치와 언론에 가진 근본적인 사람들의 인식이 표현된 거고, 유력한 매개가 인터넷이었기 때문에 기자들이 곤란하게 된 것으로 본다."


-이 사태가 진행된 방식에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전형적으로 인터넷 싸움의 문법으로 진행이 됐다.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고, 화제가 되고, 그런 것들이 다 똑같았다. 어떤 사람이 SNS에 단어 하나를 이상한 걸 썼다거나, 말 한 마디를 이상하게 한다. 그러면 ‘그 말과 표현이 그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는 매개’라고 보고 그걸 중점적으로 문제 삼는다. 그 표현에 드러나 있지 않은 맥락까지도 문제적인 걸로 만든다. 이 방식으로 인터넷에서 싸워왔다. 바탕에 깔린 인식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솔직하지 않은 표현으로 본다는 거다.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고 잠깐 드러난 이상한 표현이나 문장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본다.

 

특히 한겨레에 대해 공격하는 논의를 보면 똑같다.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을 칭찬하고 훌륭한 정부라고 이만큼 써도 사진이나 불순한 발언 하나로 500명 되는 조직을 규정해 공격한다. 우리 공동체 입장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임에는 분명하지만 얘기하고 싶은 건 그게 지금까지 일반화 돼 온 문법이라는 거다. 사람들이 인식하고 반응하는 일반화된 문법."


-왜 하필 ‘한경오’가 대상이 됐다고 보나?
"특별히 대상이 ‘왜 한경오냐’라는 건 이 사태를 보는데 반 정도 맞는 질문이라 본다. 왜 정파를 불문하고 언론이나 정치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됐느냐가 사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대선 전후 기간을 빼면 조중동 인터넷 판에 평소 댓글을 다는 분들은 보수 인사다. (댓글만 보면) 이런 천하의 몹쓸 신문이 없다. 반대 진보진영에서도 언론에 기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지 않나. (이들에게) ‘조중동’은 가짜뉴스만 쓰는 집단이고, ‘한경오’가 그나마 언론인데, 그들도 기성 언론과 똑같이 좋은 담론을 끌어와 포장을 하고 뒤에선 사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는 거다. 그런데 가끔 이 믿음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페이스북, 트위터, 영부인 호칭 논란 같은 ‘단서’가 발견되는 거다. 증거를 찾았고 기성언론은 불신한 만큼의 무자격자들이니까 같은 문법으로 비난하는 거다.


최근 조선일보가 문재인 지지자들을 홍위병이라며 문제가 있다는 사설을 쓰지 않았나. 문재인 지지자라는 방식으로 타깃팅이 됐는데 그런 분들에게 ‘안철수 지지자들한텐 안 당해봤냐’고 얘길하곤 한다. 그 정도와 규모, 표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안을 다루는 문법은 똑같다고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언론이란 게 왜 존재하냐에 대해 사실 사람들은 고민 잘 안 한다. 그런 고민은 언론 종사자나 하는 거지 바빠죽겠는데 왜 그런 고민을 하겠나. 그런 물음은 없는 상태에서 언론이 기사를 쓰면 쟤네는 저걸 왜 할까 이런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세상만사가 그런데 대다수의 경우 배후에 사익을 추구하는 논리가 언제나 있지 않나. 누군가 기부를 하면 세금 감면 등등 다른 이유 등이 있을 거라는 거처럼.


언론을 보면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 안철수 전 의원을 왜 비판할까.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그 후보를 지지하면 얻는 게 있으니까 비판을 하고 반대를 한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게 되는 거다. 세상만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갖는 ‘속지 말아야 한다는 태도’가 언론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매개와 촉매가 되고 있는 거 같다.


언론이 날 만날 속이는 거다. 그렇게 긴가민가 하고 있는데 실제로 속였다는 걸 빼도박도 못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대우 조선해양의 사장 연임을 보장해주고 호화관광을 떠나고 그런 일을 보면 언론도 만날 그러고 있는 거다. ‘내부자들’ 같은 판타지에서나,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는데 영화보다 더한 현실이 있는 거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나는 최순실을 위해서 대통령을 합니다’라고 얘길하겠나.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 그런데 들통이 났다. 그러면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을 보면서도 ‘너도 그렇겠네’ 생각하게 된다. 그 와중에 ‘너도 그렇겠네’에 맞는 사례들이 자꾸 나오는 거다. 이게 이 사태의 보편적 맥락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특수한 맥락은 뭔가?
"제가 볼 때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것과 2012년 그 이명박 정권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문재인 후보가 출마를 했다가 다 이긴 줄 알았는데 패배했던 것, 그 두 가지가 이 사태의 트라우마적인 특수성이라고 본다. 그게 같은 논리를 가진 집단들이지만 정도와 격렬함의 정도를 다르게 한 핵심 원인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지지자들에게 충격이란 것도 있지만 서거의 맥락이란 건 사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결백을 주장한 거다. 이렇게 다 속이는 세상이기 때문에 누군가 입으로 결백을 얘기하는 것은 보통 거짓말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그러면 그건 결백한 게 된다. 그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과 자신의 진영에 속한다고 자기들이 판단한 사람들의 정견과 정치적인 순결성은 보증이 된 거다.


여기서 제일 억울한 사람은 이 결백을 주장한 사람이고 그 억울함은 반복돼선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 탄생과 함께 그 억울함을 반복하지 않도록 자기들이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거다. 이게 이 사태의 특수성에 속하는 일이다."


-방금 얘기한 인식이 어떻게 그런 서사로 완성되는 게 가능했다고 보나.
"이 특수성을 뒤에서 부채질한 사람들이 있다. 일종의 ‘피해자 서사’를 완벽하게 완성시킨 사람들이 있다. 그게 불을 붙인 하나의 방아쇠다. 과거 있었던 여러 정치적 일들을 우리가 세세하게 그렇게 재구성할 수가 없다, 존재적으로. 저도 나름 2004년 이후에는 정치뉴스 내지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관심을 끊은 적이 없는데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지금 대선에서 투표를 해야 하니까 빨리 알아야 하지 않나. 그때 지지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피해자 서사를 학습하게 되는 거다. 완전무결한 피해자 서사라는 걸. 경악할 만한 사실이지 않겠나. ‘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였구나’ 이렇게 되는 거다.


그걸 보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자기들의 사익만을 추구하는 나쁜 놈들이 물어뜯어서 실패한 정권'이 된다.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비판을 받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공론으로서 바람직하게 풀려면 과연 (사익만을 추구한 언론들이 물어뜯어서) 그랬는지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 이걸 저널리즘적 방식으로, 과거를 평가하고 복기하고, 상황을 해설하는 작업들이 필요한 건데, 그런 작업은 없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도 과거 자기 정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후 반성적인 태도를 많이 취했는데, 이런 작업들은 미진하고, 오히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말도 안 되는 왜곡과 매도의 방식으로, 뭘 얘기해도 ‘참여정부 때 시작된 문제’라고 떠넘겼고, 실제로 억울해 할 만 했다. 이젠 뭐가 억울한 일이고 뭐가 안 억울한 비판이었는지 따지는 것도 너무나 어렵고 무의미한 일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지지하고 반대해야 할 이유를 가져야 되는 거 아니겠나. 그러니 이렇게 된 게 아닐까."

 

-김어준 씨 같은 인물이 현 국면에 미친 영향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김어준이란 사람은 사실은 일반 네티즌이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런 서사를 재생산하고 있는데 딴지일보와 나꼼수를 하면서 큰 영향력을 갖추게 됐다. 그 때문에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정보, 인맥, 네트워크를 갖추게 된 것이지 않나.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방식, 인식, 표현에 굉장히 익숙하고 표준 모델 같은 사람이다. 이를 테면 성공한 네티즌인데, 그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은 안한다. 본인이 인터넷 방송을 하겠다는데 사실 무슨 상관이겠나.


다만 왜 각광받고 왜 그런 위력을 갖추게 됐는지 거기 기성 체제에 속한 언론이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항상 ‘떠받들어 주는 문재인 지지자나 이런 사람들이 문제다’라는 말이 따르는데 제가 볼 때는 그 사람이 주는 효능감을 기성 언론이 주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인터넷에서 쓰이는 문법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그 방식으로 효능감을 주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인데 정론적인 방식으로 효능감을 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전문가 집단이 있고, 언론이 있고, 정치가 있는 건데 그들을 욕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두고 진보언론의 보도에서 문제 삼을 수 있는 건 피의자 사실공표 부분과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해석 부분일 것 같다. 여기서 진보언론이 특히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나.
"잘못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정말 진보언론이 이명박 정부의 프레임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을 물어뜯으려고 한 것이냐. 그건 아닌 거 같다. 언론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신은 없었던 거 같다. 그래서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이럴 때, 그걸 기사를 안 쓸 수도 없었을 것이고, 검찰이 그렇다고 하니까 적극적으로 사설 등을 통해 방어를 할 수도 없었다고 본다. 그게 일종의 원으로 남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현재 언론이 가진 역량이나 구조로선 규명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권력이 정도로 수사를 했더라면 언론도 그렇게 따라가진 않았을 거라 본다."

 

-열광적 지지자들의 반응을 보면 진보언론은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더 밉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진영논리와 함께 이들 언론의 광고주를 압박하거나 새로 매체를 만들겠다고도 한다. 주식을 구매해 한겨레를 ‘먹겠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국민TV를 만든 여러 바람이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그런 거지 않았나. 기존 언론이 편향됐으니 확실하게 화끈하게 ‘우리 편’을 들어줄 매체를 만들겠다는 생각, 그게 반영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구미에 맞는 새로운 상품이 잘 안 만들어지니까 기존 상품의 성격을 바꿔내는 길을 찾아낸 거다.


‘우리 편’이라고 하는 걸 우리가 진영논리라고 보는데 진영논리 이상의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테면 진영논리라기보다는 상품 논리다. 지금 한겨레에 대한 비판을 가장 많이 하는데 제일 많이 보이는 논리가 두 가지다. 하나는 ‘니들이 뭔데 가르치고 훈계하고 계몽하려 그러냐’ 또 하나는 ‘너네 거 안 산다’


진영논리로 보면 ‘아 우리 편인줄 알았는데 너네 편이었구나’ 이지만 상품논리로 보면 내가 ‘너네 회사 상품을 사줬는데 소비자라는 최종 절대 권력을 부정하고 소비자하고 싸우려고 하는 이런 상품은 안 사면 되는 것’이 된다. 언론 입장에선 저널리즘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소비자에겐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몰랐던 정보를 주고 나를 만족시켜줄 정견을 드러내고 내게 어떤 효능감을 주는 기사와 칼럼, 사설을 생산해야 내 구미에 맞는 상품이 되는 건데,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 상품을 살 필요도 없고 이용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되는 거다.


예컨대 예전 이랜드 불매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랜드 메이커만이 아니라 이랜드 소유의 상표를 다 가져와서 사지말자고 했는데 지금 한겨레한테 그러고 있다. 계열사, 이걸 다 보지 말고 사지말자는 식이다. 이걸 넘어서는 게 언론의 임무인데, 사실 언론만 그냥 잘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상품논리라는 게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거의 유일한 경험이 됐다. 그게 흔히 얘기하는 진영논리 배후에 숨겨진 논리가 아닐까 싶다."



-진보언론이나 기자들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온당하다고 생각하나. 그 기저에 있는 인식은 뭐라고 생각하나. 
"잘못됐다. 너무한 측면이 있다. 특히 기자들 입장에선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자들은 그게 잘못됐다고 지적하면 자기 할 일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더 중요한 건 잘못된 일이 왜 일어나는지다. 배후에 뭐가 있는지 규명하고 고민하는 게 필요한데 아직 기자들이 그런 기회를 못 가지고 있는 거 같다. 그 비난의 공통된 정서와 논리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중 하나가 ‘왜 나를 계몽하려 하냐. 너가 뭔데 날 가르치려고 드냐’라는 거라고 본다. 사실 언론은 가르치려고 있다. 단어 의미만 보면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을 설명하고 제안하고 이런 거다. ‘뭔데 가르치냐’의 핵심은 '언론이 내 위에 있지 않다'는 거고 그럴 자격이 안 된다는 거다. 인터넷 기사가 올라오면 달리는 댓글은 무조건 반말이다. 기사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건 굉장히 소수고, 이건 기사가 아니고 ‘듣보잡’ 언론이다 ‘클래스’가 안 된다는 게 대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언론으로 인정되는 언론은 없다. 언론종사자 각자가 그 논리와 정서를 발견해 분석하고 해석하는 게 필요한 거라고 본다."


-여러 측면에서 기자는 기사를 쓰는 ‘사람’으로 잘 인식이 안 되는 거 같다.
"사람들은 기자를 일종의 ‘브랜드’로 인식하지 기사를 쓰는 ‘사람’으로 잘 인식을 안 한다. 기자가 사람이니까 당연히 삶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기자가 부딪치는 여러 문제들이 있지 않겠나.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한겨레21’이 더불어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표지를 싣지 않았다. ‘유승민·남경필 후보까지 실었는데 문재인만 없을 수 있냐. 이거 봐라 이게 다 그 증거다.’ 그런 얘기를 한다. 그런데 내부에도 문재인 표지가 없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경선이 진행될 때 기획을 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는데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길 확률이 가장 높았다. 경선이 끝나고 이재명 시장이나 안희정 지사 인터뷰가 나와서 뭘 하겠나, 시의성이 없는데. 그러니 상대적으로 앞에 배치한 거고, 유력후보를 뒤로 보낸 건데 이미 이재명 시장이 나왔을 때부터 난리가 났다. 한겨레가 이재명 시장을 지지한다, 대놓고 ‘반문’이다라는 거였다. 그런데 (언론사 입장에선) 당연한 거 아닌가.


‘문재인은 결국 안 나왔다. 무슨 소리냐’고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경선기간 도중 언론과 인터뷰를 잘 안 했다. 후보가 되고 나서 하루에 스물 몇 곳 일간지 인터뷰를 몰아서 하는 통제된 언론접촉이란 변수가 있었다. 이게 기사를 만드는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인데 소비자적 관점에선 표지에 문재인이 없는 게 한겨레가 대놓고 반대하는 게 된다. 특정 기자든 언론사든, 자신의 기호를 맞추지 못하는 상품이 되는 거다.


특정 기자가 안철수 후보 기사만 쓴다는 말도 있었다. 기자가 안철수 지지자라는 거다. 국민의당 출입기자가 쓰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겠나. 하지만 그 얘길 하면 ‘그것도 모를 것 같냐’고 한다. 그러면서 국민의당을 출입하기 때문에 그렇게 쓰지만 첫째, 그러니까 당연히 편향된 인식을 갖게 될 거고 둘째, 국민의당에서 조장을 할 거라는 논리다. 되게 친하고 술도, 밥도 먹을 거고. 그런데 대선 기간 기자가 얼마나 바쁜데 그게 가능하겠나.


물론 그 비판이 100% 틀린 것은 아니다. 향응을 받아서가 아니라, 취재원과의 관계 이런 거 때문에, 인간이기 때문에 마음이 어려워지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걸 신문사도 아니까 지면 편집이란 걸 하는 거 아닌가. 데스크가 판단하고 논조를 지시하고 수정하고, 지면편집이란 방식으로 바꾸고. 그건 판단되지 않는다. 소비자적 마인드다.


안철수 후보의 단설, 병설 유치원 발언으로 시끄러웠을 때 지면을 보면 이렇게 들어갔다. 단설유치원이라 해도 문제가 있다는 기사, 그리고 각 캠프 유치원 관련 정책에 대한 기사, 나머지가 국민의당 측 해명기사였다. 이게 일반적인 지면의 문법일 텐데, 인터넷엔 따로 나간다. 국민의당 해명 기사만 보고 ‘거봐라 국민의당 해명만 실어준다’고 한다. 소비자적 마인드를 갖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말이다. 디지털 전략을 고민할 때도 거창한 얘기가 많지만 지면의 문법을 SNS에서 온라인에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거릴 남겨놓은 것 같다."


 

-현 상황에서 진보언론이나 소속 기자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장기적으로 답은 정해져 있다. 공론을 조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만드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게 정공법이고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전 세계가 다 쉽지 않은 일인데 여기서만 어떻게 쉽겠나. 단기적으로는 기존에 가진 선입견이나 관념을 다 벗었으면 좋겠다.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사안을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의 평가가 많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될 일을 평가할 때 과거 참여정부는 이렇게 했는데 그 맥락에서 이러저러 할 것이다, 혹은 이러저러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2008년 끝나고 10년이 지났다. 세상이 바뀌었고, 똑같은 친노라 해도 그 사람들 생각이 바뀌었다. 예컨대 경제 분야에서 문재인 정권이 과거 참여정부처럼 금융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냐, 그렇지 않을 거다. 10년 간 메이저 담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출입처, 자기가 담당하는 분야의 논리에 국한돼서 사안을 보고 해석하려고 하는 거다. 전체적인 방향을 보지 못하면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반론들에 대답할 말이 없어진다.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건 대단히 쉬운 방식의 비판이란 거다. 역으로 그걸 가장 잘 하는 언론사가 조선일보라는 건 아이러니다.


한겨레 기자를 만나 한번은 그런 얘길 했다. 한겨레하면 떠올리는 게 '문재인을 지지하냐, 안철수를 지지하냐만 남은 게 뭘 의미하는지 내부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였다. 한겨레는 최순실 특종 보도를 자평하지만 ‘사태를 주도적으로 끌고 간 매체로 자부하기엔 2%정도 모자란 감이 있고, 많은 기자들이 여러 시도를 하고 특종을 했지만 한겨레만의 뭘 남기지 못한 건 유감스러운  일이니 내부에서 왜 그렇게 된 것인지 평가하고 점검하는 건 필요하지 않겠나’ 그런 말씀을 드렸다. 그게 한겨레 뿐만 아니라 다른 데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논조 역시 사람들이 비판하는 건 비판으로 듣고 언론이 해야 될 역할과 지금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거에 더 중점을 두고 정하길 바란다. 언론이 그렇게 하지 않지만, 혹여나 ‘문재인 지지자들한테 비판을 받으니 어떻게 하면 호의적으로 쓸까’, ‘우릴 이렇게 비판하니까 기자들 말로 한 번 문빠들 조져야겠다’, ‘언론본령은 비판이니까 뭐라도 하나 잡아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할 수 있는 욕은 다 해보자’ 그런 세팅 방식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당분간은 비난, 비판, 억측과 누명이 안 없어지겠지만 그걸 꾸준히 해야 최소한의 신뢰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언론이 이번 사태로 역으로 억울한 존재가 되고 어떤 원망을 가지는 함정에 안 빠지면 좋겠다."


-이번 사건은 기자들의 SNS사용으로 불이 붙은 측면이 있다. 언론사나 기자들의 SNS사용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바가 있나.
"기자들이 SNS를 하는 거야 본인 자유이지 않겠나. 다만 SNS도 하나의 매체이기 때문에 기자라면 매체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는 있는 거 같다. 정말로 감정의 배설공간이 필요하다면 지인들만 있는 그룹을 만들 수도 있지 않나. 개인으로서 네티즌과 싸우겠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기자는 매체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와 권한을 소유하고 있고, 그가 싸우고 싶은 네티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싸운다고 해결이 나지도 않는다. 다만 저 네티즌을 설득해보겠다는 마음은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