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0일. 광주의 참상을 보도할 수 없었던 기자들은 펜과 마이크를 내려놨다. 나흘 전 한국기자협회가 ‘20일부터 검열 거부, 정권이 탄압할 경우 신문·방송·통신 제작 거부’를 결의한 상황이었다.
그 다음날 신군부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기자협회 집행부를 체포·수배했지만, 각 언론사 기자들은 검열·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광주의 진실을 단 한 줄도 실을 수 없었던 기자들의 저항이었다.
정일용 한국기자협회 고문(연합뉴스 대기자)은 기자협회 회장이던 2006년 “5·18 이후 전국적으로 일어난 선배들의 투쟁을 기자정신의 사표로 삼겠다”고 밝히면서 5월20일을 ‘기자의 날’로 제정했다.
“선배들 덕분에 우리가 그나마 지금의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겁니다. 고마움이 컸죠. 죄송하기도 했고요. 한국 기자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싶었어요. 매년 기자의 날, 선배들의 기상을 이어받아 다시 한 번 분발하자는 의미였습니다.”
지난 18일 만난 정 고문은 그동안 기자의 날이 자리 잡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선배들께 진 빚을 갚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1980년 5월 일주일간 이어진 투쟁의 대가는 가혹했다. 신군부는 검열·제작 거부에 앞장선 기자들을 색출했고, 1000여명이 강제로 해직됐다. 이들은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를 꾸려 현재도 언론 자유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80년에 해직된 언론인들을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포함하는 법률이 발의됐지만 아직도 계류 중입니다. 옳은 일을 하다 고난을 겪었는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거죠. 당시 정권에 부역했던 사주와 간부들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거든요. 그게 지금의 해직 문제, 언론 적폐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선배들의 명예회복은 적폐 청산이자 과거사 바로잡기입니다.”
정 고문은 1980년 5월20일의 기자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언론 자유를 위해 저항한 기자들을 언론계 스스로 외면한다면 이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언론인으로서 바른 말 하다 핍박 속에 살게 됐다면 어느 기자가 선뜻 그 길로 나설 수 있겠습니까. 언론계 내부에서도 정의를 세우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직 언론인들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그는 기자들에게 5월20일이 자랑스러운 날로 기억되길 소망했다. 기자협회가 그 의미를 널리 알려 기자들이 제 역할을 되돌아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어느덧 기자 생활 말년입니다. 기자라는 자긍심이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나 생각하면 고통스러워요. 경영난 핑계를 대며 생활인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현실도 마음 아프고요. 그럴 때마다 선배들이 어떻게 고난을 헤치며 살아왔는지 떠올립니다. 선배들께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도록 오늘도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죠.”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