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뉴스 해독제'가 필요하다

[언론 다시보기] 진민정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이사

지난 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의 청문회를 보며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뉴스 해독제’였다.


‘뉴스 해독제’란 2013년 9월 크라우드펀딩으로 설립된 네덜란드의 유료 독립매체, 드코레스폰덴트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이 매체가 이런 슬로건을 표방한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매체들이 전하는 피상적인 뉴스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러한 기존의 뉴스와 결별하고, 뉴스를 재정의하고자 한 드코레스폰덴트는 창립한지 3년만인 지난 2016년 말, 5100명의 정기구독자를 기록하며 대표적인 독립언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여타의 유럽 국가들처럼 네덜란드 역시 언론, 특히 광고에 기대는 상업 언론 모델을 채택한 종합일간지들은 답보 상태다. 대부분의 뉴스 사이트들이 클릭을 유도하는 상업적 콘텐츠나 속보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드코레스폰덴트는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가 동일한 뉴스를 생산하는 상황에서 상업성을 중시하는 정보, 인위적인 뉴스 취급을 거부하며 “뉴스라는 신기루를 쫓아가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탐사보도, 분석과 해설 등 심층보도를 중시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드코레스폰덴트와 유사한 길을 선택한 신생매체들은 점점 늘고 있다.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정보가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 심층보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혜의 저널리즘’을 주창한 미첼 스티븐스는 저널리스트들이 덜 흔하고 덜 저렴한 것을 공급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는 것들에 대해 현명한 인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저널리즘의 현실은 이러한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세월호 참사 당시 왜곡되고 뒤틀린 보도들로 인해 ‘기레기’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후, 언론의 자성을 요구했던 수많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보도 행태는 여전하다.


김상조 후보에 관한 수많은 의혹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김 후보에 대한 청문회는 언론에서 ‘의혹 눈덩이’라며 험난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제기된 의혹들 중 상당수는 과장되었거나 근거가 빈약한 것들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벌어진 것일까? 언론이라면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의 정치적 의도 혹은 이해관계로 인한 왜곡의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고 최대한 검증을 거친 후 보도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대다수가 그저 받아쓰기에만 급급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팩트가 결여된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콘텐츠를 팔지 못하고 광고를 파는 기형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언론에게만 이러한 행위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독자의 구독보다 광고에 기대는 비즈니스 모델은 저널리즘의 독립성을 와해하고 콘텐츠의 왜곡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이처럼 심화되는 언론의 반저널리즘적 행위는 언론의 신뢰회복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지금처럼 뉴스 미디어의 산업적인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는 저널리즘의 황폐화만 불러올 뿐이다. 언론 산업이 생존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건강한 저널리즘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언론의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현실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거나 심지어 현실을 왜곡하는 뉴스, 그런 뉴스의 해독제가 되겠다는 언론의 새로운 결단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더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등을 돌리기 전에, 그래서 언론이라는 자격을 완전히 상실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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