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바겐'에 숨죽인 브라질…대선 판도 회오리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브라질 사법 당국은 지난 2014년 3월부터 이른바 ‘라바 자투(Lava Jato·세차용 고압 분사기) 작전’으로 불리는 권력형 부패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의 칼끝은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에서 시작해 대형 건설업체 오데브레시를 거쳐 세계 최대 규모 육류 수출업체 JBS까지 향한 상태다. 원자력발전소와 2014년 월드컵 경기장 건설 공사를 둘러싼 부패 의혹도 수사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부패수사가 이처럼 빠르고 폭넓게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플리바겐(유죄 인정 조건부 감형 협상)이 큰 역할을 했다.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은 기업의 전·현 임원들은 형벌 수위를 낮추려고 정경유착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정치인과 대형 기업의 유착 관계가 플리바겐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JBS는 정치인 1900명에게 총 1억5000만 달러의 뇌물을 주고 그 대가로 연금펀드와 국영은행 등으로부터 투자금과 대출을 받은 혐의를 인정하면서 32억 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검찰과 합의했다. 이 회사의 회장·부회장을 지낸 형제는 플리바겐 덕분에 실형을 면했다. 플리바겐이 아니었으면 형제에게 최고 2000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로서는 부패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다. ‘좌파의 아이콘’ 룰라 전 대통령도, 우파의 리더 테메르 현 대통령도 플리바겐을 통해 새로운 의혹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와 돈세탁 등 혐의로 연방검찰에 의해 수 차례 기소돼 재판을 받아야 한다. 테메르 대통령은 JBS 회장을 만나 뇌물수수 혐의로 복역 중인 정치인의 증언을 막기 위해 금품 제공을 협의했다는 내용의 녹음테이프가 공개되면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사법 당국의 부패수사가 갈수록 확대되면서 정치권에서는 플리바겐의 법적 증거 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이런 목소리는 부패를 브라질 사회의 가장 큰 ‘적폐’로 규정하고 이번 기회에 고질적인 부패 관행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거센 여론에 묻히고 있다.


3년 넘게 계속되는 부패수사는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앞당기고 1980년대 중반 민주화 이후 형성된 정치구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브라질에서는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이 종식되고 10년 가까운 과도기를 거친 이후 좌파 노동자당(PT)과 우파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이 정권을 양분해 왔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정당이 30개를 훨씬 넘을 정도로 정당이 난립했지만, 권력의 중심에는 항상 두 정당이 있었다.


그러나 부패수사로 기성 정치인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으면서 2018년 대선이 새로운 인물들의 경쟁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상 최악의 경제 침체와 대통령 탄핵, 부패 스캔들 등을 겪고 나서 치러지는 2018년 브라질 대선이 ‘아웃사이더’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부패 의혹에 휩싸인 테메르 대통령이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면서 예상보다 빨리 대선정국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정치권의 시선은 차기 대선이 치러지는 2018년 10월로 향하고 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