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민주당 도청 의혹' 진상조사 나서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24일 김인규 사장 나와. 최시중도 나올 테니까 최선을 다해 야당 입장을 잘 주장하고 국민에게 알리고 그 사람들에게 뭔가 얻어내려 해야 한다. 24일, 28일 날도 계속하고, 28일 날은 내가 보기에, 28일 날은 지금부터 잘 민주당 사람 총집결해야 한다…(후략).”


2011년 6월24일 당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의 비공개회의 발언 녹취록”이라며 읽은 내용의 일부다. 전날 민주당이 KBS 수신료 관련 논의를 위해 개최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발언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올 수 있을까.


당시 수신료 인상에 사활을 걸었던 KBS가 민주당의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해 한 의원에게 넘겼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회의실 밖에서는 회의 내용이 전혀 들리지 않은 까닭에 도청을 하지 않고서는 발언 내용을 상세히 옮긴 녹취록 작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도청 논란이 일자 당시 한선교 의원은 “민주당이 작성한 문건을 제3자에게 받았다. KBS에서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경찰의 출석요구에 불응했고, 도청 당사자로 의심받은 KBS 기자는 경찰 조사에서 휴대폰과 노트북을 잃어버렸다고 진술했다.


경찰과 검찰은 6개월 수사를 벌였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며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회의를 도청해 한선교 의원에게 건넨 정황이 짙었음에도 부실 수사 논란 끝에 종결된 이 사건이 6년 만에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난 8일 독립언론 ‘뉴스타파’ 보도가 발단이 됐다.


뉴스타파는 도청 논란 당시 KBS 보도국장을 지냈던 임창건 현 KBS 아트비전 감사를 인터뷰해 새로운 팩트를 제시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임창건 감사는 “당시 악의적인 도청은 아니었지만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몰래 녹음한 행위는 있었던 것 같고, 이를 토대로 작성된 발언록 형식의 문건을 KBS 관계자가 당시 한 의원에게도 건네 준 것도 맞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보도가 나오자 임창건 감사는 9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뉴스타파가 보도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많은 부분이 왜곡됐다고 말했다. 그는 “KBS가 도청했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며, KBS 기자가 한선교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발언록은 당시 인터넷 기사에서 보도한 내용을 본 기억이 있어 설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인터뷰 기사가 문제가 되면 흔히 나오는 “앞뒤 자르고 보도해 논란을 키웠다”는 해명성 발언이었다. KBS의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은 임 감사의 석연치 않은 해명으로 끝날 사안이 결코 아니다. KBS 새노조가 성명에서 밝힌 것처럼 “KBS와 정치인의 유착이 사실이라면 언론사에 남을 부끄러운 스캔들”인 것이다.


우리는 이번 뉴스타파 보도가 KBS가 도청 의혹에 연루됐다는 불명예를 끊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MB특보 출신 사장’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수신료 인상에 ‘올인’했던 김인규 전 사장, 당시 보도본부장으로 수신료 인상을 총괄했던 고대영 현 사장 등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불가피하다.


아울러 도청 당사자로 지목받는 KBS 기자는 이제라도 모든 걸 털어놔야 한다. 특히 그의 상급자였던 당시 국회반장, 정치부장 등 윗선의 개입 여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3년차에 불과했던 그 기자는 언론사 조직 특성상 선배들의 지시에 따랐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다들 입을 맞춘 듯 하나같이 ‘모르쇠’로 발뺌하면서 임창건 감사의 해명 뒤로 숨기에 급급하다. 특히 KBS는 뉴스타파 보도에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사법당국의 조사와 별개로 KBS는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도청 사건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진실은 가리려 해도 가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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