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는 태생적으로 민주성을 결핍하고 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추종해서다. 민주주의도 경제적이진 않다.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칙에 따라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선거는 1인 1표로 동등하지만, 기업 의결권은 1주 1표로 주식을 많이 소유한 주주가 의사결정을 지배한다.
서로 다른 원리로 돌아가는 정치와 경제 분야의 두 주류적 질서가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독일 수정주의 이론가인 베른슈타인은 “근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모든 자본주의적 성격의 제거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로 꼽히는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조차 경제 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 달성의 전제 조건으로 규정했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화 외에 경제적 영역에서의 민주화로 완성된다는 견해다. 반면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정치나 국가의 간섭을 배척한다. 그들에게 경제 민주주의는 경제 법칙과 시장 논리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실상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 공생해온 게 현실이다. 예컨대 19세기 산업혁명에 이은 자본주의의 발전은 경제적 풍요를 통해 중산층의 폭을 넓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동력을 제공했다. 또 확대된 민주주의는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과 정치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해 자유 시장경제가 꽃피는 토양이 됐다.
자본주의 경제는 효율적이지만 완전하지 않다. 금융 위기 등 잇따라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가 이를 방증한다. 시장경제에 대한 민주적 규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민주적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효율이 파괴될 때 성장과 혁신이 멈추고 민주주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어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두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상호 필수 조건이다. 균형이 깨지거나 한쪽이 너무 앞서 달리면 수레는 전복되고 만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자본 노동 소비자 간 구조적 긴장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관리, 해소돼 파국을 막아왔다. 이런 상생을 통해 “자본주의라는 착취 구조는 필연적으로 경제 붕괴와 공산주의의 도래를 몰고 온다”는 마르크스(Marx)의 예언을 용도 폐기시켰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은 우리의 헌법 정신이기도 하다. 헌법 제119조는 1항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천명하는 동시에 2항을 통해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균형’과 ‘안정’을 위한 경제 민주화를 인정하는 동시에 ‘조화’에도 방점을 둬 경제 민주주의의 과도한 확장을 제한하고 있다.
경제 민주주의가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행사에서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고 밝히면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 ‘대화’와 ‘타협’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집단역량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경제 민주주의는 정치적 영역의 민주화에 비해 더욱 미묘하고 복합적인 쟁점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