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개월 반이 지났다. 지난 달 칼럼에서 한국정치도 대통령을 보면서 ‘소통의 형식’이 아니라, ‘소통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는데, 이제 ‘신선한 소통’ 그 이상의, ‘현명한 내용’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이제부터는 ‘현명함’이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넘어야할 산’들은 이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교육(=자녀)과 안보(=생존)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그것이다. 경제(=세금, 집값, 일자리)도 중요한 변수이지만, 현 상황에서는 교육과 안보 문제보다는 파급력이 덜해 보인다.
먼저 교육 문제다. 이건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내 아이’의 문제이다. 자녀 문제와 관련이 되면 휘발성이 커진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따라잡았다가 지지율이 반락하는 계기가 됐던 것도 이 ‘아이 문제’였다. 병설-단설 유치원 논란과 5-5-2 학제개편 공약이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촉발시켰다. 최순실 사태도 “돈도 실력...부모를 원망해라”라는 정유라의 SNS 글이 국민들의 마음에 분노의 불을 붙인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김상곤표 교육부’는 ‘수능 절대평가’를 하겠다고 밝혔다. 내신 절대평가 이야기까지 나왔다 들어갔다. 그래서 “대학 신입생을 도대체 무엇으로 뽑겠다는 거냐? 뭘 준비해야 하는 거냐?”며 불안해하는 초·중학생 학부모들이 많다. 여론의 다수는 ‘그나마 공정한’ 정시 확대인데, 반대 방향이다. 또 특목고, 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하필이면 청문회 과정에서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자녀를 특목고, 자사고, 8학군에서 교육을 시켰고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 미국 유학을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인터넷에는 “자기들은 좋은 교육 다 시켰으면서, 이제 없애겠다는 거냐. 국민들은 개천에서 용꿈 꾸지 말고, 붕어로 그냥 살아가라는 얘기냐”는 냉소의 목소리가 보인다.
교육보다 더 심대한 ‘불안감’을 줄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안보 문제다. 인간의 근원적 불안의 원천인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훨씬 크다. 얼마 전 문정인 대통령 특보가 미국에 가서 “사드 문제로 동맹이 흔들리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라고 말했다. 그 장면이 TV 화면을 타고 생생하게 전해지면서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의 안보를 지탱해온 ‘한미 동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토로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청와대도 문정인 특보도 수습에 나섰지만, 그 말을 들은 미국측은 “한국방어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보호하겠다는 방어무기도 배치하지 못하게 하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 미사일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우리 청년들을 보호하겠다는 건데, 1~2년을 기다려 보라는 건 우리가 필요 없다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동맹은 우정과 비슷하다.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감정적 서운함이 우정을 망치는 경우가 제법 된다. 동맹 없는 ‘나 홀로 국방’은 미·중을 제외하고 세계 3~6위 국가들인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도 선택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게다가 위험한, 불안한 길이다. 북한 핵의 위협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실제로 한미동맹이 심각하게 흔들린다면, 국민들의 생존에 관한 불안감은 정치권 전체를 뒤흔드는 ‘뇌관’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집권 후 첫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국민들이 생존과 자녀의 미래에 관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기를 기대한다. 안보와 교육은 ‘선택의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다. 국민을 ‘안심’시켜주고 나서, 경제 등 다른 ‘선택의 문제들’을 놓고 보수와 멋진 경쟁을 벌여 주면 좋겠다. 그게 선진국식, 미국식 소통의 ‘형식’으로 환호를 받은 문 대통령이 선택해야 할 선진 정치의 ‘내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