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향한 인신공격 선을 넘었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한겨레가 일부 누리꾼들의 인신공격에 고통 받는 자사 기자들에게 법률 자문을 해주기로 했다. 한겨레는 지난 21일 전체 사원에게 메일을 돌려 “기사 내용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더라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있겠으나, 개인 신상에 대한 비난이 위험수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며 “회사 차원에서 기자 개개인의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필요한 법률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피해 사례를 모아 법률 자문을 받았으며 대표이사의 결재가 나면 사이버 수사대에 수사를 정식 의뢰할 예정이다.


저널리즘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시대는 끝났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시민들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세상이다. 언론이 시민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만큼 시민들 또한 언론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 시민들은 기사 내용의 잘잘못을 따져 오류를 지적하거나 취재가 부족한 사안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 좋은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언론이 시민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소통에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저널리즘을 만들도록 장려하는 걸 넘어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인에 대한 비판 기사를 썼다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기자들을 인신공격하고, 협박도 모자라 가족까지 위협하는 행위는 묵과할 수 없다. 특히 여기자들에 대한 입에 담기 어려운 성희롱, 여성 혐오적 막말, 성폭력협박은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니 애비와 애미에게 어린년이 씨~이러면 뭐라고 XX을 떨지가 궁금하다’ ‘저 얼굴에 XX하고 싶다’는 저질댓글은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댓글과 비교하면 양호한 편에 속한다.


과격한 일부 누리꾼의 언어폭력에 정신적 고통을 겪는 기자들까지 생겨났다. 악성댓글에 시달린 한 기자는 지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악플’을 단 누리꾼들처럼 느껴지며, 자신을 비난하는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한다. 이 기자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언론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런 심리적 위축은 기자의 자기검열로 이어져 쓸 기사를 못 쓰게 하고, 폭력의 두려움에 취재 현장에서 뒤를 돌아다봐야 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이는 언론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저널리즘을 위축시키는 행위다.


촛불혁명으로 구체제를 혁파한 우리 사회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기자를 향한 일부 누리꾼들의 인신공격은 다름의 차이를 존중하고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촛불의 시대정신과 부합하지 않아서다. 물론 우리는 일부 누리꾼의 극단적인 문제제기의 배경에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힘없는 사람들이 아닌 기득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진실을 수익과 맞바꾸려 거래하고, 부나방처럼 페이지뷰를 좇고, 자사 이기주의에 경도돼 사실을 왜곡하는 등 저널리즘을 오염시키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기성 언론의 잘못된 행태는 인신공격과 여성 혐오적 표현으로 바뀌지 않는다. 언론에 실망했다면, 이 기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사의 잘못된 지점을 냉정하게 짚어내고 비판해야 한다. 기자들은 오히려 그런 댓글에 더 아파할 것이다. 언론 역시 누리꾼들의 합리적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는 한편 건전한 토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지 성찰해야 한다. 기자들도 시민을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상당수 언론사 기자들이 악성 댓글로 고통 받고 있다. 한겨레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들도 기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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