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베 시대의 서막

[글로벌 리포트 | 일본]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자민 참패 과거 최저’(아사히), ‘자민 역사적 참패’(요미우리), ‘고이케 세력 압승, 자민 참패’(산케이), ‘자민 역사적 참패’(마이니치), ‘고이케계가 과반수 자민 참패’(닛케이).


일본 전국지 1면 톱 기사들은 자민당의 참패로 끝난 도쿄도의회 선거결과를 ‘역사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2009년 7월12일 치러진 도쿄도의회 선거 때도 ‘역사적인 참패’라는 제목이 1면을 장식했다. 자민당은 같은 해 8월30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현 민진당의 전신)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번 도쿄도의회 선거 결과가 정권을 넘기게 된 계기를 만든 2009년과 남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도쿄도의회 선거 투표율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녹색 선풍이 불었음에도 역대 5번째로 낮은 51.28%를 기록했다. 자민당 득표율은 25%에서 22%로 아베 수상의 지지율의 절반 정도에 그쳤다. 선거전에 59석으로 원내 1당이던 자민당은 선거 결과 23석으로 의석수가 3분의2로 줄면서 원내 제3당으로 전락했다. ‘역사적인 참배’를 기록한 2009년에도 공천을 받은 후보의 60%는 당선됐지만 이번에는 60% 이상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낙선한 후보자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인은 아베 수상을 둘러싼 스캔들과 장관들의 실언 릴레이로 자민당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여론의 변화를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투표 하루 전날의 자민당 마무리 집회에서 아베 수상에 대한 야유다. 현역 수상에 대한 야유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자전문상가인 아키하바라는 자민당이 자주 이용하는 단골 유세 장소이지만 아베 수상은 4번의 지원 유세 중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00여명의 항의단들은 이날 ‘아베 물러나라’라고 적힌 대형 걸개그림을 들고 취재진의 옆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아베 물러나라(퇴진하라)’, ‘아베 꺼져라’, ‘아베, 스가(관방장관)를 감옥으로’, ‘아베 타도’라는 팻말도 들고 나왔다. 유세 내내 이어진 야유는 오후 4시 아베 수상이 나타나자 절정에 달했고 일부 청중들까지 가세해 아베 수상이 연설하는 15분간 끊이지 않았다. 야유가 점점 높아지자 야유에 연설이 묻히지 않을까 마이크의 볼륨도 덩달아 높아졌다.


야유에 흥분한 아베 수상은 유권자인 이들을 향해서 “(저런 사람들 같이) 상대방의 주장을 방해하는 행동을 자민당은 절대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비방중상해서는 아무것도 좋은 일이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절대 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한 노인은 ‘이런 사람들이라니! 도민이고 국민이야’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아베 수상 본인이야 말로 야유의 상습범이다. 국회 답변에서 야당의원이 질문하는 도중에 야유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야당의원으로부터 ‘야유하지 마세요’라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 때때로 상임위 운영위원장으로부터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


아키하바라의 야유는 아베 정권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도쿄신문 편집국은 아키하바라의 야유 영상을 트위터를 통해서 신속하게 전달했고 순식간에 3596회 리트윗됐다. 또 아베 수상의 발언에 항의하는 노인의 목소리를 전달한 트위터는 2만3585회 리트윗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장면들은 방송을 통해 전달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유권자들의 야유나 이들에 대한 아베 수상의 발언을 일체 보도하지 않는 쪽으로 각 당의 마무리 집회를 보도했다. 유일하게 도쿄방송(TBS)만 유권자들의 야유가 있었다는 장면을 짧게 내보냈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에야 각 방송사들은 일제히 야유 장면을 보도하고 수상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아베 정권은 선거 때 마다 방송사에 보도 협력을 빙자한 압력을 가해 왔지만 이번에도 그랬을까. 선거결과가 ‘역사적’이지 않았다면 아베 수상은 ‘어디까지나 지방선거’라고 결과를 과소평가하고, 선거에 이기면 ‘아베 정권의 정책 노선이 지지받았다’고 개헌을 밀어 붙일 계획이었다. 포스트 아베 시대의 서막이 어떻게 전개될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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